의식은 언제 붕괴하는가에 대한 완벽한 시뮬레이션
*사진: Unsplash
*이 글은 영화에 대한 강력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의식 붕괴를 설계한 완전한 사고 실험
이 영화는 무엇이 진실인가?를 묻는 것이 아니다.
진실이 왜 감당 불가한가?를 묻는 방식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1. 이 영화는 미스터리가 아니다.
이 영화는 의식 유지 알고리즘에 대한 실험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여러 번 볼 수 밖에 없다.
처음에 본 영화의 스토리는 이렇다.
A. 테디는 미쳤다.
B. 병원이 조작했다.
C. 반전이 있다.
그러나 다음 번에 보는 영화의 스토리는 완전히 달라진다.
영화 독해는 이 질문에서 시작한다.
이 영화의 질문은
무엇이 사실인가?가 아니라
의식은 어떤 조건에서 유지되는가?이다.
즉, 의식의 붕괴를 막기 위해 현실을 얼마나 왜곡할 수 있는가에 대한 영화이다.
2. 테디는 정신병자가 아니다.
자기 서사를 잃을 수 없는 존재이다.
인간은 사실로 살아가지 않는다.
서사로 살아간다.
테디가 가진 문제이다.
A. 그는 사실을 모른다: 거짓
B. 그는 사실을 거부한다: 거짓
그는 사실을 거부한다는 명제는 왜 거짓일까?
사실을 거부한다는 말에는 이런 전제가 숨어있다.
사실을 인식했다.
그 사실을 의식적으로 부정했다.
다른 해석을 택했다.
이것이 인지적 거부이다. 그러나 테디의 상태는 이런 구조가 아니다.
그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나,
그 사실을 자기 서사에 통합할 수 없다.
이건 통합 불능의 상태이다.
사실을 거부하는 자는 그것이 사실이 아님을 말할 수 있다. 대체 서사를 의식적으로 선택한다. 논쟁이 가능하며 그것은 설득의 여지가 있다. 그에 반해 테디는 사실을 알고 있으나, 그 사실을 포함한 자기 서사를 가질 수 없는 사람이다. 즉, 사실이 있다는 것은 안다. 그런데 그 사실이 들어오면 자아 구조가 붕괴된다. 그러니 말로 부정하지 않는다. 대신 서사 전체를 재설계 한다. 이것은 심리적 선택의 문제를 넘어서서 구조적 한계다.
영화가 가진 매력은 테디를 단순하게 '사실을 거부한다.'라고 설정하지 않은 것이다. 테디는 의식적으로 눈을 감은 것이 아니다. 영화는 복잡한 설계를 통해 그의 의식을 차근 차근 해부한다.
영화 속 테디는 거짓이라거나 나는 믿지 않겠다거나 사실이 아니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는 사실이 튀어나올 때마다 더 정교한 이야기 구조를 만들어낸다. 이를 통해 그는 스스로를 선한 위치에 재배치 시킨다.
이것은 셔터 아일랜드 영화의 잔혹한 지점이다.
그는 사실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사실을 거부하는 것도 아니다.
사실을 안 채로 존재할 수 없다.
그러니 그는 비겁했다거나 현실을 외면했다거나 도망쳤다로 비난 받을 상태가 아니다.
영화가 보여주는 의미는 이것이다.
모든 인간에게
사실을 견딜 수 있는 구조가 주어지는 건 아니다.
그러니,
도덕의 문제를 넘어서서 정신 구조의 문제를 드러낸 작품이다.
테디는 사실을 거부한 것이 아니라,
사실을 포함한 채로는 존재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선택한다.
삶이 아닌,
자기 서사의 형태를.
그가 직면해야 할 현실은 다음을 동시에 요구한다.
1. 나는 아내의 병을 알고 있었다.
2. 나는 아이들이 위험하다는 걸 알았다.
3. 나는 행동하지 않았다.
4. 그 결과 아이들은 죽었다.
이건 죄책감 그 아래
'나라는 개체를 설명할 수 없게 만드는 데이터'가 도사리고 있다.
3. 병원은 가해자가 아니다.
의식 복구 시스템의 수리공이다.
대부분의 관객은 병원을 악으로 규정하나, 영화는 병원을 악으로 연출하지 않는다.
병원의 실제 역할은 기억을 강제로 주입하는 것도, 세뇌, 통제도 아니다.
병원이 한 실험은 이것이다.
"그가 진실을 포함한 새로운 서사를 만들 수 있는가?"
이 실험이 실패하면 그는 다시 망상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다.
그러니, 이는 인간 의식의 구조적 한계를 증명하는 실험이다.
4. 의식의 계층 구조와 공간 연출
이 영화는 하나의 지도(map)이다.
바다; 억압된 무의식
섬; 고립된 자아
병동; 통제된 인식
지하; 폭력과 원초적 충동
등대; 사실 그 자체. 이는 서사 없는 진실이다.
중요한 점은 등대에는 '이야기'가 없다. 그래서 등대는 공포가 아니라 공백으로 연출된다.
인간이 가장 두려워하는 건 공포가 아니라
의미가 제거된 상태이다.
5. 물, 불, 환각은 의식 붕괴 신호 체계이다.
물; 기억의 침식, 서사의 붕괴, 통제 불능
불; 죄책감, 파괴된 가정, 회피 불가능한 데이터
환각; 자각 직전의 시스템 경고, 여기서 더 가면 복구 불가를 알리는 알람
6. 마지막 선택의 의미
그는 '미쳐서' 돌아간 것이 아니다.
이 영화의 모든 내용을 담은 대사이자 핵심이다.
"Which would be worse… to live as a monster or die a good man?"
괴물로 살아가는 것과
선한 사람으로 죽는 것
그 둘 중 무엇이 더 어려울까?
그러니, 테디가 한 것은
실패가 아니라 종료의 선택이다.
그는 계산을 끝냈다.
진실을 받아들인 상태로 살아갈 경우, 의식 붕괴의 지속, 자기 서사 불가능, 생존의 불가.
서사를 유지한 채 죽을 경우, 좋은 사람으로 의식의 완결.
그는 삶이 아니라 '의식의 형태'를 선택했다.
7. 이 영화의 잔혹함
셔터 아일랜드가 무서운 이유는
인간은 진실보다
자기 서사를 더 필요로 한다는 사실 때문이다.
더 잔인한 지점은 이것이다.
모든 인간이
자기를 직시할 수 있는 구조를
가지고 태어난 건 아니다.
이 영화는 윤리, 감정, 반전 대신 이것을 보여준다.
의식은 언제 붕괴되는가에 대한
완벽한 시뮬레이션
그리고 마지막 질문은 테디가 아닌
관객에게 던져진다.
만약 당신이
당신 삶의 진실을
아무런 해석 없이
아무런 서사 없이
데이터 그대로 본다면,
당신은 여전히 '당신'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우리는 여기에서 멈짓 할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이 질문에는 정답이 없기 때문이다.
사실은 언제나 처리 가능한 대상이라고 생각하는가?
사실이라는 형식만으로는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막힌 벽이 있다.
옳고 그름도, 책임과 용서도 작동하지 않는 지점
그 사실을 포함한채 계속 존재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 뿐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셔터 아일랜드, 섬이다.
더 이상 의미로 변환되지 않는 고립된 장소.
사실을 알게 되는 것과
사실을 안 채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정말 같은 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