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의 주제이기도 하다.
*사진: Unsplash
불교에서 말하는 명상의 주제이기도 하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
그 어떤 판단도 서사도 없이
자신을 또 다른 관찰자의 위치에서 그대로 보는 것.
이것이 깨달음의 길이자, 지금-여기에 머무는 방법이다.
그러나, 왜 인간은 사실을 통합할 수 없는가?
늘 갖고 있던 이 의문에 대한 해답을
영화 감상문 세 편을 쓰면서 찾을 수 있었다.
흔히 우리는 이렇게 생각한다.
사실을 알면 이해하고
이해하면 받아들이고
받아들이면 통합한다라고.
하지만, 이는 이론적 인간에 대한 이야기이다.
실제 인간의 1차 목적은 생존이다.
생존이란,
내가 나로 계속 존재할 수 있는가
내가 나 자신을 견딜 수 있는가라는 문제이다.
통합이 되지 않는 이유는 고통 때문만은 아니다. 구조적 조건이 있다.
'사실'이 다음을 동시에 파괴할 때
도덕적 자기 이미지; 나는 괜찮은 사람이다. 나는 선한 사람이다.
인과적 자기 설명; 내가 왜 이런 사람이 되었는지 설명 가능하다.
미래 가능성; 그래도 나는 계속 살아갈 수 있다.
이들이 함께 무너질 때,
사실은 더 이상 정보가 아니라 존재 붕괴 데이터가 된다.
에고는 죽지 않기 위해 발버둥친다. 그래서 사실을 진실이 아닌 의미로만 처리할 수 있다.
에고는 계산한다.
이 사실이 나를 어떤 위치에 놓는가
이 사실이 나를 설명 가능한 인간으로 남겨두는가
그래서 에고는 이렇게 작동한다.
사실을 서사로 변환가능하면 통합,
사실을 서사로 변환불가능하면 차단/왜곡/분리 ; 해당 내용은 무의식의 심연으로 추락
안타깝게도 인간은 사실 그 자체를 견디도록 진화하지 않았다.
인간의 뇌는 진실 탐지기가 아니다. 예측과 안정성 유지 장치이다. 그것도 효율성이 최고 가치인.
뇌는 끊임없이 묻는다.
이 정보는
나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는가?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무시, 재해석, 왜곡, 망상, 기억 수정
통합 가능한 사실; 아프지만 설명 가능, 책임이 있지만 회복 경로 존재, 윤리적 재배치 가능 -> 서사를 통한 재구성 가능
통합 불가능한 사실; 내가 나를 혐오하게 만든다, 어떤 해석을 붙여도 정당화 불가, 미래의 나를 상상할 수 없다. -> 에고 붕괴
이 두 지점에서 인간은 선택한다. 그 선택은 언제나 존재 보존이 승자이다. 통합은 쉽게 버려진다. 물론, 이 과정에서 통합의 가능성은 사람의 개인차가 존재한다. 그 차이는 극단적으로 심각한 차이가 발생하기도 한다.
진짜 잔혹한 결론은
다들 알겠지만 이렇게 나온다.
모든 인간이 모든 사실을
통합할 수 있는 구조로 태어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통합 능력은 도덕성과 비례하지 않는다.
이는 존재의 물리 법칙에 가깝다.
인간이 사실을 통합하지 못하고 무의식의 심연으로 버리는 이유는,
너무 아파서가 아니라
그 사실을 포함한 채로는
'나'라는 시스템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