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춤의 기술 -HSP, 엠패스를 위한

정서 정보 처리자의 구조적 전환을 위한 구체적 방법

by stephanette

*사진: Unsplash


공감 능력자는 흔히 예민함 때문에 상처받는다고 말해진다. 그러나 문제는 예민함이 아니다. 문제는 예민함이 작동하는 순간을 통제할 수 없다고 믿어온 사고방식이다.


누군가 감정을 쏟아낼 때, 그것이 내 안으로 흘러들어오기까지는 아주 짧은 간격이 존재한다. 대부분은 그 간격을 인식하지 못한 채 자동 반응으로 넘어간다. 느끼는 순간 곧바로 흡수하고, 흡수하는 순간 곧바로 짊어진다. 이 과정은 너무 빠르게 일어나기 때문에 필연처럼 보인다. 그러나 필연은 아니다. 그 사이에는 선택의 공간이 있다.


공감은 종종 희생과 동일시된다. 느낀다면 책임져야 하고, 알아차렸다면 해결해야 한다는 암묵적 규칙이 따라붙는다. 이 규칙은 공감 능력자를 도덕적으로 우월한 위치에 올려놓는 동시에, 지속적인 소진 상태로 밀어 넣는다. 공감이 곧 자기 소거가 되는 구조다.


그러나 느끼는 것과 흡수하는 것은 동일하지 않다. 타인의 감정을 인지할 수 있으면서도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지 않을 수 있다. 이 구분이 무너지면 공감은 정서적 의존으로 변한다. 나는 당신을 느낀다. 그리고 이제 당신의 고통은 나의 것이 된다. 이 상태에서 관계는 돌봄이 아니라 이전(移轉)이 된다.


건강한 공감은 다르다. 나는 당신을 느끼지만, 내가 당신이 되지는 않는다. 이 차이는 윤리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다. 흡수는 자동 반응이고, 관찰은 의식적 선택이다. 공감 능력자의 힘은 느끼는 능력에 있지 않다. 느낀 뒤 무엇을 할지 결정할 수 있는 능력에 있다.


이 결정은 거창한 결심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아주 미세한 신체 신호에서 시작된다. 가슴이 조여오는 순간, 이유 없이 피로가 밀려오는 순간, 어깨가 무거워지는 순간. 몸은 언제나 먼저 반응한다. 이 신호를 감정으로 규정하지 않고, 정보로 인식할 때 공간이 생긴다. “이 감정은 나의 것인가.” 이 질문 하나만으로도 흡수는 중단된다.


공감 능력자들이 흔히 택하는 전략은 보호다. 벽을 쌓고, 거리를 두고, 관계를 줄인다. 일시적으로는 효과가 있다. 그러나 보호는 통제가 아니다. 고립은 주권이 아니다. 외부의 경계는 내면의 중심을 대신해주지 않는다.


중심을 세우는 방식은 차단이 아니라 멈춤이다. 자극과 반응 사이에 존재하는 그 짧은 간격을 인식하는 것. 그 안에서 흡수할지, 관찰할지를 선택하는 것. 이 선택이 반복되면 반응 패턴은 느려지고, 자극과 반응 사이의 공간은 확장된다.


이 변화는 관계를 재편한다. 감정을 쏟아내기 위해 다가오던 사람들은 불편함을 느낀다. 그들은 더 이상 자신의 무게를 맡길 곳을 찾지 못한다. 반면 중심이 있는 관계는 남는다. 설명을 요구하지 않고, 반응을 강요하지 않는 관계들이다. 관계의 수는 줄어들지만, 밀도는 높아진다.


경계는 거절이 아니다. 경계는 지속 가능성이다. 내가 사라지지 않은 상태로 타인과 함께 존재할 수 있게 만드는 조건이다. 타인의 고통을 대신 짊어지는 것은 연민이 아니다. 그것은 개입이며, 때로는 상대가 스스로 감당할 기회를 박탈하는 행위다.


공감 능력자의 전환점은 여기서 발생한다. 더 이상 감정의 통로가 아니라, 감정이 지나가는 공간이 될 때. 반응하는 존재에서 선택하는 존재로 이동할 때. 민감함은 그제야 약점이 아니라 기능이 된다.


이 변화는 더 편해지는 방향으로 가지 않는다. 오히려 한동안은 더 고요해지고, 더 외로워진다. 그러나 그 고요 속에서 드러나는 것은 소진되지 않은 자기 자신이다. 타인의 감정에 가려지지 않은 목소리, 욕망, 판단 기준이다.


공감 능력자의 성장은 더 많이 느끼는 데 있지 않다. 무엇이 자신의 것이고, 무엇이 아닌지를 분별하는 능력에 있다. 그 분별이 가능해지는 순간, 공감은 더 이상 소모가 아니라 주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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