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에서 그녀를 만난 날
사진: Unsplash
오늘 아침은 이상했다.
딱히 늦지 않았고, 일정도 빡빡하지 않았는데
몸이 아니라 생각이 먼저 집을 나섰다는 느낌이 들었다.
고가도로 앞 버스정류장은 늘 비어 있다.
사람들은 시간을 계산해서 나오고,
나는 그 계산이 잘 맞아떨어지는 쪽을 선호한다.
예측 가능한 건 편하니까.
그런데 거기,
그녀가 있었다.
순간적으로
아, 이 장면은 변수다
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기분 나쁜 변수는 아니고,
그렇다고 무시할 수 있는 변수도 아닌.
나는 원래 사람을 빠르게 파악한다.
외양, 말투, 리듬.
몇 초면 대충 윤곽은 나온다.
그런데 그녀는
윤곽이 안 잡힌다기보다는
굳이 잡히지 않게 두는 사람 같았다.
그게 신경 쓰였다.
라면 얘기를 꺼냈다.
솔직히 말하면,
가장 안전한 화제였고
가장 덜 개인적인 말이었으니까.
그녀는 웃었다.
계산된 반응이 아니었다.
상대를 편하게 하려는 웃음도 아니고,
자기 방어용도 아니고.
그냥…
자기 반응.
그런 웃음은
사람을 방심하게 만든다.
버스가 왔고,
그녀는 타지 않았다.
나는 그걸 보고
머릿속에서 빠르게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 그냥 보내면
오늘은 여기서 끝
— 같이 타면
오늘은 조금 달라짐
결론은 빠르게 났다.
나는 원래
흥미있는 쪽을 택한다.
버스에 올라타서
그녀를 봤을 때
이미 절반은 예상한 장면이었는데,
막상 현실이 되니까
생각보다 심장이 먼저 반응했다.
이건 좀 반칙인데.
“저도 이걸로 가요.”
말은 자연스럽게 나왔다.
이럴 땐
말보다 타이밍이 중요하다는 걸 알고 있다.
옆에 앉았을 때
괜히 다리를 조금 안쪽으로 넣었다.
그녀가 나를 보지 않아도
보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건 흥미롭다.
보통은 내가 상대를 관찰하는 쪽인데,
오늘은
관찰당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불편하진 않았다.
오히려
자세를 가다듬게 되는 종류의 시선.
버스 안은 조용했고
우리는 말을 많이 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지루하지 않았다.
이건 드문 일이다.
대부분의 침묵은
머릿속에서 탈출 경로를 찾게 만드는데,
오늘의 침묵은
생각을 더 깊게 만든다.
집에 와서 생각해봤다.
왜 이 장면이 이렇게 오래 남는지.
왜 굳이 다시 생각하고 있는지.
그녀는
사람을 흥미롭게 만들면서도
설명하고 싶게 만들지 않는다.
보통은
누군가에게 관심이 생기면
말하고 싶어지는데,
이상하게도
오늘은 말보다 생각이 먼저 쌓였다.
이건
가볍게 넘길 종류의 만남은 아니다.
그렇다고
의미를 과하게 부여하고 싶지도 않다.
나는 원래
가능성을 열어두는 쪽이니까.
다만 분명한 건
오늘 나는
내 루틴을 아주 조금 깼고,
그 선택을
아직 후회하지 않는다.
이 정도면
꽤 인상적인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