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은
과거의 사체를 뜯어먹으며
달려드는 호랑이의 몸부림이다.
– 발터 벤야민
패션은 옷이나 유행, 스타일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근대의 시간감각이다.
지금 우리가 새롭다고 느끼는 것들, 최신 트랜드와 유행과 감각,
'지금-여기'에 속한다고 믿는 모든 것들을 패션이라고 부른다.
과거의 사체란
이미 끝난 시대이자 죽은 가치, 소멸된 양식, 더 이상 현재가 아닌 것들이다.
그런데 패션은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죽은 과거를 잘라내어 다시 입히는 행위이다.
빈티지, 레트로, 복고, 리바이벌, OO년대 감성 다 죽은 시대의 재활용을 위미한다.
그래서 사체라는 표현을 쓴다.
잔인하지만 정확하게.
왜 뜯어먹는다 인가?
이는 생존이다.
패션은 과거를
기념하지도, 애도하지도, 이해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다만, 먹어서 에너지로 바꿀 뿐이다.
과거의 의미는 사라지고 외형, 질감, 이미지, 스타일만 남는다.
그리하여 맥락은 사라진다.
왜 하필 호랑이인가?
호랑이는 사냥하는 맹수이자 멈추면 죽는 존재이다.
패션은 멋있어서 달리는 것이 아니다. 멈추면 죽기 때문에 달리는 존재이다.
그러니, 호랑이는 배고픔의 상징이자 끝없는 추진력이자 스스로를 멈출 수 없는 힘이다.
몸부림은 의지나 선택, 여유와는 무방한 살기 위한 무의식적 반응이다.
패션은
창조의 축제, 자유의 표현이 아니라
시간에 쫒기는 근대의 경련이다.
벤야민은 말한다.
패션은
아름다워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시간에 뒤쫒기며 살아남으려는 경련이다.
우리가
'새로움'이라고 부르는 것은
사실
죽은 과거를 먹고 연명하는 현재의 발작이다.
현재는
패션, 콘텐츠, SNS, 밈, 트렌드, 자기 브랜딩 전부 이런 구조로 움직인다.
과거를
빠르게 소비하고, 맥락 없이 잘라내고, 이미지로 재가공해서, "지금 뜨는 것"으로 팔아버린다.
그러니 벤야민의 문장은
패션에 대한 말이자
현대 전체에 대한 진단문이기도 하다.
이는
우리가 시간을 대하는 방식의 잔인함을 고발하는 말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