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사 나논 Casa Nanon

모든 것을 하얗게 채우는 것으로 당신의 영혼을 구원할 수는 없다.

by stephanette

에토레 소트사스 작(Ettore Sottsass), 벨기에 라나켄 지역의 개인주택


주거를 가장한 형이상학적 장치


1. 이 건축은 존재 조건을 설계한다.

카사 나논은 거주 편의의 최적화가 목적이 아니다.

이 집의 목적은

인간이 자기 몸과 감각을 다시 인식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문을 통과하면 즉시 안정이 오지 않는다.

시선은 항상 어딘가에 걸리고, 꺾이고, 지연된다.

공간은 사용자를 배려하지 않고 요구한다.


2. 색은 논리 연산자다.

소트사스의 색을 흔히 감각적이라 부른다.

카사 나논에서 색은 구조적 언어다.


색은

공간의 문법이자

기능 분절의 대체물이자

이동의 속도 조절 장치이다.


이 집에서 색은

의미의 경계선을 시각화한다.

그러니 의사결정 시스템이다.


3. 기하학은 의식의 도형화

이 집의 기둥, 벽, 계단은

하중 계산의 결과처럼 보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실제로도

하중보다 '상징'을 더 많이 지탱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둥은 구조물이라기 보다 의식의 축이다.

계단은 상태 변화의 장면이다.

벽은 경험의 컷 편집이다.


그러므로 이 건축은

뉴턴의 공간이 아니라

현상학적 공간이다.


4. 모더니즘 비판을 넘어 모더니즘 이후의 선언

카사 나논은

"기능주의는 틀렸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더 잔인한 말을 한다.

"기능만으로 인간은 설명되지 않는다."


합리성은 배제되지 않는다.

다만 지배권을 박탈당한다.

감정, 의식, 기억이 동등한 설계 변수로 들어온다.


이 순간 건축은 기술이 아니라

인문학의 하드웨어가 된다.


5. 이 집은 거리 조절로 사생활을 만든다.

개인 공간은

문을 닫는 것으로 확보되지 않는다.


까사 나논은

시선의 비껴감

높이 레벨 차이

색과 기하의 전환


즉,

나뉘어 있지만 단절되지 않고,

함께 있지만 침범되지 않는다.


사생활은 관계적 거리를 통해 설계되어 보장된다.


6. 공용 공간은 겹칩의 지점이다.

이 집은

거실이나 식당이

전통적인 중심이 아니다.


까사 나논의 단란함은

모두가 모여야 생기는 구조가 아니라

각자의 동선이 자연스럽게 스치는 구조에서 발생한다.


이 겹침이

강제되지 않은 단란함을 만든다.


7. 사적 공간은 구분되어 있으나 고립되지 않는다.


개인의 방과 휴식 공간은

명확히 보호된다.

하지만

완전한 차음이나

완전한 단절이 아니다.


존재의 기척을 남긴다.

혼자 있다는 느낌은 유지되지만

혼자 버려졌다는 느낌은 없다.


8. 색채감과 경계

색은 공간의 소유권이다.


개인과 공유, 그리고 중간지대.

하지만 색채는 벽이 아니다.

그래서 관계는 끊기지 않고 흘러간다.

이는

감각적으로 가족 간의 정서적 안전거리와도 같다.


9. 밀착과 동시성 그 사이에 존재하는 단란함


이 집이 말하는 단란함이다.


"같이 있으려고 애쓰지 않아도

같은 시간 안에 존재하는 상태"


각자 다른 일을 해도

같은 리듬 안에 있는 느낌


매우 성숙한 가족 구조는

말해지고 나면,

그렇지 않은 것들과 미세한 차이만이 있을 뿐이다.



"사랑하지만 삼키지 않는다.

가깝지만 흐트러지지 않는다."




https://www.tumblr.com/sixtensason/64695145004/ettore-sottsass-casa-nanon-birdhouse-lanak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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