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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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이전 글의 변주이자 '삼체'의 블랙포레스트 이론에 대한 확장이다.
1. 인간은 왜 불확실성 앞에서 폭력적인가?
토머스 홉스는 악마적 인간관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가 본 인간의 문제는 약함이라기보다는 불확실성이다.
인간은 타인의 의도를 확인할 수 없다.
미래를 예측할 수 없다.
이 두 가지가 겹치면, 합리적 선택은 하나뿐이다.
선제적 폭력
홉스에게 자연 상태란
확실한 평화를 보장할 구조가 없을 때 발생하는 상태다.
그러므로 폭력은 리스크 관리다.
2. 정치는 왜 적과 동지로 구분할 수 밖에 없는가
칼 슈미트는 홉스보다 더 냉정하다.
정치의 본질은 도덕도, 합의도, 토론도 아니다.
누가 적인가를 결정하는 능력이다.
위기 상황에서는 중립이 불가능하다.
생존의 순간에는 선의가 판단 기준이 될 수 없다.
그래서 적은 악인이 아니라
나의 생존을 위협할 가능성이 있는 타자다.
의도는 중요하지 않다.
능력과 가능성만이 중요하다.
이것은 삼체의 공리와 동일하다.
상대의 의도는 알 수 없다.
기술 발전 속도는 예측 불가하다.
3. 윤리는 왜 생존과 항상 충돌하는가
한나 아렌트의 후기 사유는 중요한 지점을 시사한다.
그녀는 도덕을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아주 잔인한 사실을 인정한다.
윤리는
인간이 살아남은 이후에야 작동한다.
전체주의, 전쟁, 붕괴의 상황에서
사람들은 악해서 잔혹해진 게 아니다.
사유를 멈추면, 윤리는 즉시 중단된다.
즉,
생존이 위협받는 순간
인간은 윤리보다 구조적 합리성에 복종한다.
그러므로 윤리는 본능이 아니며
유지하기 가장 어려운 인간적 조건이다.
4. 우주적 규모로 확장된 합리적 공포
소설 '삼체'는 위의 명제들을 우주 전체로 확장했다.
블랙 포레스트 이론은 감정이 없다.
도덕도 없다.
악의도 없다.
모든 문명은 생존을 원한다.
상대의 의도는 알 수 없다.
기술 격차는 언제든 뒤집힌다.
그러므로 합리적 선택은 침묵이며,
타자는 발견 즉시 제거가 최적 전략이다.
삼체의 우주관은 잔인해서 어두운 것이 아니다.
너무나 합리적이어서 어둡다.
5. 마무리
불확실성은 폭력을 낳는다.
생존 앞에서 세계는 적과 동지로 분할된다.
윤리는 생존 후에야 가능하다.
그 논리를 우주 전체에 적용하면, 침묵만 남는다.
이것은 논리적 필연이다.
이 생각을 하고 있자니
약간 쓸쓸해졌다.
이는 관계가 부정되어서가 아니다.
관계가 조건적이라는 사실을
너무 정확하게 인식했기 때문이다.
아무 계산 없는 선의는 위험하다.
아무 거리 없는 친밀은 폭력으로 전환될 수 있다.
침묵은 회피가 아니라 전략일 수 있다.
이것을 알게 되면,
관계는 깊어질 수 있지만
절대 순진해질 수는 없다.
삼체는 인간을 비관하지는 않는다.
인간을 너무 잘 이해해서, 더 이상 위로하지 않는 소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왜 관계를 맺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