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체'를 읽고 - 블랙 포레스트 이론과 공존 모델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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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삼체' 소설 및 드라마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 블랙 포레스트 이론
우주는 어두운 숲이다. 모든 문명은 유령처럼 나무 사이를 돌아다니며 길을 막는 나뭇가지를 조심스럽게 밀어내고 소리 없이 발걸음을 옮기려고 노력하는 무장한 사냥꾼이다. 숨쉬는 것조차 조심스럽게 한다.
우주는 왜 침묵하는가?
기본 공리
1. 모든 문명은 생존을 최우선 목표로 한다.
2. 문명은 상대의 의도를 절대 확신할 수 없다.
3. 기술 발전 속도는 예측 불가능하다.
결론
1. 선의는 검증 불가
2. 침묵은 생존 전략
3. 발견되는 순간 제거가 합리적 선택
그러므로 우주는 조용하다. 말하는 문명은 죽는다.
이 이론은 냉정한 합리성의 극단이다.
진심이면 통한다거나
선의를 믿자거나
대화를 통해 해결할 수 있다는 그 모든 것들은
상대의 내부를 알 수 없다는 전제 앞에서 붕괴한다.
2. 삼체 2권의 핵심 인물인 뤄지에 대해
뤄지는 처음엔 무기력하고 무책임하다. 감정도 책임도 회피하는 인물이다.
그런데 우주의 구조를 이해하는 순간, 그는 가장 위험한 존재가 된다.
왜냐하면 그는 말하지 않음으로써 위협하는 법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뤄지의 계획은 단순하지만 치명적이다.
나를 죽이면, 너도 죽는다.
이는 공격이라기보다는 공멸을 담보로 한 억지력이다.
삼체 문명은 뤄지의 계획을 눈치채지만 그 위협을 제거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말하지 않는 위협은 제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주는 대화로 유지되지 않는다.
침묵과 위협으로만 균형이 유지된다."
3. 이러한 합리성 위에서 공존이 가능하려면?
이 이론을 인간관계로 번역하면
모든 관계에는 블랙존이 있다.
모든 인간에게는 그림자가 있다.
어둠을 무시하면 그 대가를 치르게 된다.
관계에서 사람들이 무너지는 지점은 아래와 같다.
선의만 있으면 된다.
진심이면 통할 것이다.
상대의 침묵, 회피, 불안을 '관계 속에서'의 감정으로만 해석한다.
그러니, 암흑의 숲이 가진 합리성을 기본 전제로 한다면,
관계는 감정으로 맺어지지 않는다.
계산된 거리 위에서만 유지된다.
이는
서로의 파괴 반경을 침범하지 않는 상태이자
상대를 흔들지 않는 거리이자
상대가 나를 건드리지 않는 안정이다.
암흑의 숲이 말하는 가장 성숙한 관계는
서로의 어둠을 계산한 상태다.
그 연장 선상에서 바라보는 존재란,
자기 궤도를 유지한 채 스쳐지나가는 것이다.
존재는 밝되, 불빛은 낮춘다.
공존은 허용하나 그건 굳이 공존을 요구하지 않는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약간 쓸쓸해졌다.
삼체를 통해 얻게 된 질문들
1. 우리는 선한가? 선의는 증명될 수 있는가?
2. 인간은 합리적인가?
3. 사랑과 윤리는 생존 앞에서 유효한가?
4. 침묵은 비겁함인가, 생존 전략인가?
암흑의 숲은 말한다.
우주는 잔인해서 어두운 게 아니라,
합리적이기 때문에 어둡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