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률적으로 거의 제로에 가까운 가능성

소설 '삼체' 그 이후의 인간에 대하여

by stephanette

*사진: Unsplash

*이 글은 이전 글의 변주이자 '삼체'의 블랙포레스트 이론에 대한 확장이다.

*이 글에는 소설 및 드라마 '삼체'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삼체의 결론은

낙관적 희망은 아니다.

다만 희망으로 볼 수 있는

유일한 윤리적 선택을 제시한다.

위로라기보다는,

조건부 가능성이다.


마지막 장면의 구조를 살펴보자.

여주인공은 소우주 안에 머물 수 있었다.

소우주는 안전하다.

시간도 안정적이다.

외부 우주의 붕괴와 무관하다.


문제점은 있다.

소우주는
대우주에서 질량을 빼앗아 유지되는 구조다.


즉,

내가 살아남는 대신

우주는 더 빨리 죽는다.


그래서 주인공은 선택한다.

소우주를 포기하고,
질량을 대우주로 환원한다.


이 선택은 감정적 선택이 아니다.

이는

사랑의 선택도

희생 미학도

휴머니즘적 눈물도 아니다.


이 선택은 극도로 냉정한 계산 위에 있다.

왜냐하면 삼체의 세계관에서

선의는 보상되지 않는다.

희생은 기억되지 않는다.

우리는 구조적으로 무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선택이 등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만약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아무도 보상하지 않으며

아무 결과도 보장되지 않는 선택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선택하는 존재를

우리는 뭐라고 불러야 하는가?"


이 질문은

홉스와 슈미트 그리고 블랙 포레스트를 전부 통과한 이후에야 등장한다.


그래서 이것은 희망이 아니다.

이는 윤리가 완전히 사라진 우주에서도
윤리를 선택할 수 있는가에 대한 실험이다.

이 선택의 특징은

생존에 불리하다.

합리성에 반한다.

전략적으로 손해다.

누구도 증명해주지 않는다.

그런데도 선택된다.


삼체는 냉소도 낭만도 아니다.

이런 선택이
아주 드물게
발생할 수도 있다.
즉, 확률적으로 거의 제로에 가까운 가능성이다.


이는 밝지도 어둡지도 않다.

그저 '열린 상태'다.


우주는 여전히 냉정하고

생존 논리는 여전히 유효하고

블랙 포레스트는 무너지지 않는다.


하지만 단 하나.

우주는 완전히 닫히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계산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선택이

아주 가끔 발생하기 때문이다.


희망이 있어서 하는 선택은 아니다.
이 선택이 있기 때문에
희망이라는 개념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는다.


이는 가장 잔인한 장면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이 선택은 누구에게도 요구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택하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은

조용히 남겨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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