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와 자유의 그 균형점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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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이전 글의 변주이자 '삼체'의 블랙포레스트 이론에 대한 확장이다.
관계에 대한 새로운 좌표계의 설정
예전에는 관계에 대해서 이렇게 생각했었다.
이해가 깊어질수록 관계는 안전하다.
인식이 확장되면 선의는 통할 수 있다.
침묵은 결핍이 아니라 충만일 수 있다.
각자가 자기 주권을 지키면서도 연결될 수 있다.
지금은 그 전제 조건에 대해서 매우 이상적이라고 판단한다.
이는 성숙한 존재 사이에서만 성립하는 정의이다.
현실의 대부분의 인간은 이 전제에 도달해 있지 않다.
다만 그러려고 할 뿐이다.
새로운 좌표계는 위험 관리 모델이다.
삼체를 읽고
관계란 감정의 진정성이라기 보다,
관계란 서로의 파괴 반경을 정확히 인식한 상태라고 규정하게 되었다.
이것은 현실 적응이자
위험을 더 이상은 낭만으로 덮지 않게 된 것이다.
관계란
서로를 이해하는 것이 아니다.
관계란
서로를 오해했을 때도 파괴하지 않을 수 있는 거리와 규칙을 합의하는 구조다.
감정 몰입형의 사랑이라거나
구조 미고려형의 친밀감 혹은
진심이면 통할 거라는 식의 접근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
서로의 그림자를 알고도 침범하지 않는 관계
연결을 요구하지 않는 친밀감
증명, 확인, 소유가 없는 만남
이 층위의 관계는 가능하다.
감정적으로 열정적이지도 흔들리지도 않지만
존재론적으로 훨씬 안정적이다.
이 층위의 관계는 열정 대신 고요를 대가로 요구한다.
관계는 구조가 명확할수록 지속된다.
사랑은 상대의 궤도를 존중하는 것이다.
침묵은 고도의 신뢰이거나, 전략적 거리다.
이 정의를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의 숫자는 급격하게 줄어든다.
관계를 덜 믿게 된 것은 아니다.
관계에 기대지 않아도 되는 상태에 가까워진 것이다.
관계는
구원도 아니고
필요조건도 아니고
증명 대상도 아니다.
그저 선택 가능한 공존이다.
이건 조금 쓸쓸하지만
동시에 아주 자유로운 상태다.
그리고 이 정의는 다시는 이전으로 돌아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