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에 대한 해상도를 높이는 것은 늘 즐겁지만은 않다.

관계와 자유의 그 균형점에 대하여

by stephanette

*사진: Unsplash

*이 글은 이전 글의 변주이자 '삼체'의 블랙포레스트 이론에 대한 확장이다.


관계에 대한 새로운 좌표계의 설정


예전에는 관계에 대해서 이렇게 생각했었다.

이해가 깊어질수록 관계는 안전하다.

인식이 확장되면 선의는 통할 수 있다.

침묵은 결핍이 아니라 충만일 수 있다.

각자가 자기 주권을 지키면서도 연결될 수 있다.

지금은 그 전제 조건에 대해서 매우 이상적이라고 판단한다.


이는 성숙한 존재 사이에서만 성립하는 정의이다.

현실의 대부분의 인간은 이 전제에 도달해 있지 않다.

다만 그러려고 할 뿐이다.


새로운 좌표계는 위험 관리 모델이다.

삼체를 읽고

관계란 감정의 진정성이라기 보다,

관계란 서로의 파괴 반경을 정확히 인식한 상태라고 규정하게 되었다.


이것은 현실 적응이자

위험을 더 이상은 낭만으로 덮지 않게 된 것이다.


관계란

서로를 이해하는 것이 아니다.

관계란

서로를 오해했을 때도 파괴하지 않을 수 있는 거리와 규칙을 합의하는 구조다.


감정 몰입형의 사랑이라거나

구조 미고려형의 친밀감 혹은

진심이면 통할 거라는 식의 접근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


서로의 그림자를 알고도 침범하지 않는 관계

연결을 요구하지 않는 친밀감

증명, 확인, 소유가 없는 만남

이 층위의 관계는 가능하다.


감정적으로 열정적이지도 흔들리지도 않지만

존재론적으로 훨씬 안정적이다.


이 층위의 관계는 열정 대신 고요를 대가로 요구한다.

관계는 구조가 명확할수록 지속된다.

사랑은 상대의 궤도를 존중하는 것이다.

침묵은 고도의 신뢰이거나, 전략적 거리다.

이 정의를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의 숫자는 급격하게 줄어든다.


관계를 덜 믿게 된 것은 아니다.

관계에 기대지 않아도 되는 상태에 가까워진 것이다.


관계는

구원도 아니고

필요조건도 아니고

증명 대상도 아니다.

그저 선택 가능한 공존이다.


이건 조금 쓸쓸하지만

동시에 아주 자유로운 상태다.

그리고 이 정의는 다시는 이전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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