흡혈귀의 영화감상- 나이브스 아웃; 웨이크 업 데드 맨

영화 속 인물과 심리 탐구

by stephanette

*사진: Unsplash

*이 글은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 주드 듀플렌티시 신부가 주인공인 이유

그는 살인을 이론으로 아는 사람이 아니다.

죄를 경험으로 체화한 사람이다.

그래서 그의 신앙은

'그리스도의 위치에서 내려다보는 것'이 아니다.

통과한 기억 위에서 세워진 신앙이다.


이 인물은 이해했기 때문에 용서한 신부가 아니라

이미 같은 심연을 통과해봤기 때문에 판단하지 않는 인간이다.


인간이 왜 넘는지

어떤 순간에 선이 무너지는지

그리고 그 이후에 무엇이 남는지

그는 이미 몸으로 알고 있다.


그러므로

그는 살인을 '사건'으로 보지 않는다.


대부분의 인물들은 질문한다.

왜 그랬을까?

잘못이었을까?

용서받을 수 있을까?


주드 신부는 이미 알고 있다.

그 지점까지 밀려갔구나.


그는 살인을 윤리 문제로 환원하지 않고,

존재의 붕괴 지점으로 인식한다.


신부로서 충실할 수 있었던 이유는

구원자 역할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설교하지 않고

판단하지 않고

구원해주겠다고 나서지 않는다.

그는 단지 같은 어둠을 통과한 인간으로 그 자리에 서 있다.


그의 곁에서 마사는

방어하지 않아도 되고

설명하지 않아도 되고

변명하지 않아도 된다.

그 앞에서는 그대로 존재할 수 있다.


이 영화에서 말하는 이해는 연민이 아니다.

신부는 방향성을 제시한다.

마사의 마지막 남은 정리

그의 이해는 "나도 거기까지 가봤다."에서 시작한다.


이 말 한마디가 모든 윤리보다 강하다.


신부는 이 작품에서

신의 대리인이 아니라

인간 이해의 극점으로 등장한다.


신부로서 역할을 충실하게 해낼 수 있었다.

깨끗해서 신부가 된 것이 아니다.

더럽혀진 이후에도 인간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2. 마사는 왜 '더러운 창녀' 그녀를 증오했을까?

표면적 이유는 도덕적 우월감이다.

이는 사실 거리두기이다.

나는 너와 다르다.

나는 더 깨끗하다.

나는 피해자일지언정 타락하지는 않았다.

이는 동정이 아니라 위치 선언이다.

나는 너보다 위에 있다는 무의식적 선 긋기.


거리를 두는 이유는 그녀가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기 때문이다.

마사가 보석을 탐내는 그녀를 증오한 진짜 이유는

그녀가 '될 수도 있었던 나'였기 때문이다.


그녀는

같은 구조 안에 있었고

같은 폭력과 착취의 시스템을 통과했고

다른 선택이 아니라 다른 결과에 도달한 존재다.


도덕의 차이라기보다는

생존 경로의 차이다.


마사는

"나는 저렇게 되지 않았어"라고 믿고 싶었고

그래야 자기 정체성을 지킬 수 있었다.


증오는 자기 부정의 또다른 형태이다.

마사의 증오는 사실 이 문장으로 요약된다.

"나는 저렇게 살지 않았다는 증거가 필요하다."


그 증거가 무너지면

자기 도덕성도

자기 선택의 의미도

나는 옳다는 이야기 전체가 무너진다.


그래서 마사는 그녀를 '더러운 창녀'라는 표현으로 대상화하고 타자화해야 했다.


이 이야기는 미스터리로 가장한

도덕 서사의 해체이다.


선과 악

피해자와 가해자

순수와 타락

이 구분을 그대로 믿지 않는 위치에 놓이게 한다.

이 영화가 겨냥한 관객의 위치이다.


마사가 그녀를 증오한 이유는

그녀가 너무 정직하게

"이 세계에서 인간이 어떻게 살아남는지"를 보여줬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편했고,

그래서 미워했고,

그래서 끝내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이 모든 것에서 살인의 동기는 시작되고

그 모든 과정을 겪고 난 이후에야

'증오'는 종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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