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은 처리되는가, 위탁되는가

관계에서 벌어지는 보이지 않는 차이

by stephanette

*사진: Unsplash


사람들은 종종 관계의 문제를 사랑의 크기나 진심의 유무로 설명한다. 그러나 실제로 많은 어긋남은 감정을 '어디에서 처리하느냐'라는 훨씬 구조적인 차이에서 발생한다. 심리학에서는 감정 조절 방식을 크게 두 갈래로 나눈다. 내면화와 외부화. 전자는 감정을 자기 내부로 가져와 해석, 통합하는 방식이고, 후자는 감정을 외부 대상이나 상황을 통해 완충하고 해소하는 방식이다. 이 차이는 사소해 보이지만, 관계의 밀도와 지속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감정을 내면화하는 사람들

감정을 내면화하는 사람은 감정이 생기면 그것을 곧바로 행동이나 말로 배출하지 않는다. 대신 감정을 의미로 바꾸는 과정을 거친다.

왜 이 감정이 생겼나?

이 감정은 나의 어떤 가치와 연결되는가?

이 감정이 삶의 구조 안에서 어떤 자리를 차지하는가?

이 과정을 통해 감정은 소모되는 것이 아니라 통합된다. 그래서 이 유형의 사람에게 관계란 위로를 받는 장치가 아니라 자기 정합성을 확인하는 공간이 된다. 관계가 깊어질수록 피로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조용해진다.


감정을 외부화하는 사람들

반대로 감정을 외부화하는 사람은 감정을 자기 안에 오래 두지 않는다. 불안은 바쁨으로, 공허는 만남이나 자극으로, 살아 있다는 감각은 타인의 반응으로 조절한다. 이들에게 관계는 감정을 해석하는 장소가 아니라 감정을 완충하는 환경에 가깝다. 그래서 관계는 깊어질수록 안정적이기보다는 오히려 부담스러워진다. 깊이는 책임을 부르고, 책임은 기존의 삶의 균형을 흔들기 때문이다. 관계를 '관리'한다. 유지되면 충분하고, 끊어지지 않으면 성공이다.


문제가 발생하는 지점

갈등은 보통 이 지점에서 발생한다. 한쪽은 관계를 통해 감정을 함께 통합하려 하고, 다른 한쪽은 관계를 통해 감정을 분산하려 할 때. 내면화형은 "왜 이 관계가 이런 구조인지"를 묻고, 외부화형은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라고 느낀다. 서로의 언어가 다르다. 한쪽은 의미를 말하고, 다른 한쪽은 상태를 말한다. 이때 관계는 종종 사랑의 문제가 아니라 감정 처리 시스템의 충돌이 된다.


관계는 서비스가 아니다

최근 많은 글에서 반복적으로 지적되는 부분이 있다. 관계가 무의식적으로 감정 처리 서비스로 전락하고 있다는 점이다. 누군가의 불안을 안정시켜주고, 누군가의 공허를 채워주고, 누군가의 생동감을 유지해주는 역할. 그러나 감정을 외주화한 관계는 필연적으로 비대칭이 된다. 한쪽은 소진되고, 다른 한쪽은 유지된다. 관계는 원래 누군가를 살아 있게 만드는 도구가 아니라, 서로가 자기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는 장이어야 한다.


어긋남은 실패가 아니다

이 차이는 우열의 문제가 아니다. 성숙과 미성숙의 문제도 아니다. 그저 존재 방식의 차이다. 다만 중요한 건, 이 차이를 감정으로 해석할수록 상처는 깊어진다는 사실이다. 사랑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감정을 다루는 위치가 달라서 어긋나는 관계들이 있다. 그 사실을 구조로 이해하는 순간, 관계는 비극이 아니라 정확한 분기점이 된다.


우리가 물어야 할 질문

관계를 시작하기 전에 혹은 유지하고 있다면 이 질문 하나는 필요하다.

우리는 감정을 같은 방향으로 처리하고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다르다면, 아무리 애써도 같은 곳으로 도착하지는 못한다. 그리고 그건 누군가의 잘못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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