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가도 비상도 사용 설명서

상태 고정 금지 조항, 평안을 유지하는 방법에 대하여

by stephanette

*사진: Unsplash


도가도 비상도

명가명 비상명

- 노자, 도덕경


이 문장을 처음 만났을 때

무슨 말인지 잘 알지 못했다.

아무 말도 하지 말라는 뜻인가

말하면 틀린다는 경고인가

도는 신비하고,

이해는 언제나 부족하다는

그런 선언일까.


그런데 어느 날,

이 문장이 전혀 다른 얼굴로 다가왔다.

하나의 진리라기 보다는

인간 의식 운영에 대한 설명서였다.


말로 설명될 수 있는 도는

늘 그러한 도가 아니라는 말은,

도는 설명할 수 없다는 뜻이 아니다.


설명되는 순간

그것을 붙잡으려는 태도가 문제라는 뜻이다.


현 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방법은

이 상태가 유지되는가를 의식하지 않는 것이다.


말은 방향을 가리킬 수는 있지만

그 자체가 길이 될 수는 없다.

지도는 길이 아니고,

이론은 삶이 아니며,

이해는 상태를 대신하지 않는다.


그래서 노자는 처음부터 경고를 붙여 둔다.


이 문장을 고정하지 말 것.

이 개념을 소유하지 말 것.


요즘의 나는

삶이 유난히 편안하게 흘러가는 상태에 있다.


무언가를 더 얻어서가 아니라,

무언가를 덜 개입하게 되어서다.


의식이 늘 전면에 나서 있던 시절에는

모든 관계를 관리했고,

모든 감정을 해석했고,

모든 상태를 점검했다.


그때 나는 늘 깨어 있었고,

늘 피곤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의식이 한 발 물러났다.

의식은

관찰자의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운전석은 내려놓았다.


그랬더니

결과는 더 정확해졌고

힘은 덜 들었으며

말은 줄었고

통찰은 오히려 더 선명해졌다.


이 상태를 유지하는 방법을 생각해보았지만

곧 알게 되었다.


유지하려고 하지 않는 것.


유지하려는 순간

그것은 다시 일이 된다.

쉼을 쉼이라 부르는 순간

쉼은 더 이상 쉼이 아니다.


그래서 도가도 비상도는

머리로 이해되는 문장이 아니라

몸으로 체감되는 문장이었다.


아,

이걸 붙잡으면 안되는구나.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상대가 무엇을 하든

그 행동 하나로

관계를 결론짓지 않게 되었다.


관계의 존속 여부를

상대의 즉각적인 반응에 연동하지 않게 되자

아이러니하게도

관계는 더 편해졌다.


에고가 줄어든다고 해서

존재가 작아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관계에서 조정하려는 손이 사라진다.

그때 비로소

상대도 편해진다.


이건 기술이 아니라

상태다.


도가도 비상도,

명가명 비상명은

"아무 말도 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다.


이렇게 읽히는 편이 더 정확하다.


지금 네가 이해한 그것마저

고정하지 말라.


쉼을 정의하지 말고

도를 규정하지 말고

상태를 소유하지 말 것.


그래서 결국 남는 건

이론도, 설명도 아닌

아주 단순한 감각이다.


아, 편하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이 문장을 이해했다고 말할 수 있을 때

이미 이해한 것은 아니고,

웃고 지나갈 수 있을 때

비로소 체감한 것이다.


도가도 비상도

상태 고정 금지 조항.


오늘은 그냥

살아지는 쪽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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