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때로

비참해진 나를 끝까지 목격하는 일에 더 가깝다.

by stephanette

낭만적인 사랑이 대외적으로 표방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게

사랑은 사람을 꼭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


자기 안의 통제 되지 않는 구역을

강제로 열어젖히는 일 같을 때가 있다.


그래서 어쩌면,

나이가 들수록

사랑을 한다는 것에서

좋은 것들만 남기고

다른 것들에는 닿지 않는

그 깊이까지만 가고 싶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평소엔 그럭저럭 잘 살던 사람도,

사랑 앞에서는 우선순위가 무너지고,

자존심이 흔들리고,

내가 나를 다 안다고 믿었던 착각까지 깨져버린다.


매우 오랜 세월을

사랑을 하지 않고 살았다.

자랑은 아니다.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나를 보여주지 않는다면

다시는 상처받을 일이 없다고 여겼다.

그리고 그런 목적대로

피상적 연애를 하고

상대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나의 감정도 잔잔했다.

사랑하면서도 다른 변화없이

업무용 관계처럼 덤덤한 그런 연애들.

그래서 헤어짐도 아무런 충격없이 쉽게 그렇게 지나갔다.


이제와서

연애 속에서 나 자신을 바라본다.

굳이 상처입을 가능성까지 포용하게 된 이유는

그다지 의식적인 결정도 아니었다.

다만, 여러가지 일들을 겪으면서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었다.


두려움에 굴복하지 않고

자존심이나 수치심들을 다 내려놓고

있는 그대로의 상태로 상대를 만나는 순간들을

나는 나에게 허용했다.


그래서?

그래서

비참했다.

그 사람 앞에서 드러난 내가 너무 낯설어서.


"이렇게까지 매달리는 사람이었나?"

"내 안에 이런 결핍이 있었나?"

"나는 왜 이 한사람 때문에 이렇게 무너지나"

"내가 세웠던 그 수많은 단계와 원칙들을 쉽게 내려놓게 되었나"

이런 것들을 목격하는 일은

너무 아프다.

자신의 부족함과 무너진 모습들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일은

그 무엇보다도 피하고 싶은 일이다.


그러나,

그러기로 했으니

그러기로 한다.


한편으로는

사랑은 일종의 정신병처럼 느껴진다.


그건 약해서라기보다

그만큼 사랑은

이성의 언어가 아니라

무의식의 언어로 들어오기 때문이다.


사랑은

계획표대로 움직이지 않고,

인간을 가장 원초적인 자리로 끌고 가서

결핍, 욕망, 버려질까 두려운 마음, 인정받고 싶은 마음,

어린 시절의 상처와 트라우마들

깨어진 유리잔의 파편처럼

삐죽삐죽하고 자잘한 수많은 조각들에

예리하게 베여가는 일이다.


그러니까

사랑은

자신의 가장 취약한 구조가 선명하게 드러나는 일이다.


그래서

상대보다

자기 밑바닥에 질려버리기도 한다.

그게 진짜 비참한 지점이다.

차라리 상대가 나쁘기만 하다면 분노로 끝낼 수 있을텐데,

사실은 내 안의 가장 심연을 같이 들여다보게 된다.


그러나

비참함은 망가졌다는 증거는 아니다.

가장 숨기고 싶었던

혼자서는 찾을 수 없는

자기 진실과 맞닥뜨렸다는 증거이다.


내가 무엇에 굶주려 있었는지,

어떤 사랑 앞에서 작아졌는지,

어떤 사람에게는 나를 잃고

어떤 사람 앞에서는 오히려 더 내가 되는지

처음으로 알게 한다.

그러니

암흑에 가려진 맵을

서서히 밝혀가는 일이기도 하다.

첫눈 쌓인 하얀 들판을 처음으로 디디는 것처럼


사랑은 사람을 비참하게 만들 수 있다.

사랑은 품위를 시험하는 게 아니라

내 가장 깊은 결핍을 드러낸다.


나를 잃게 만드는 사랑은

황홀할 수 있어도

오래 보면 파괴적이다.


그러니

결국 중요한 것은

누군가를 사랑하느냐보다

내 밑바닥을 보는 순간에도

내가 나를 버리지 않게 만드는 관계를 만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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