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굽는 방법에 대하여

내 이상형은 센스 있는 사람이다. 당연한 거 아닌가

by stephanette

어쩐 일인지 새벽 식탁 위에는 쿠키들이 남아있다.

보통 꼬맹이들은 쿠키를 굽고

제각각 맞는 포장을 해서

건네 줄 친구의 이름을 붙여 놓는다.

그러니 남아 있을 리가 없다.


"오구오구 일어났어??!! 우리 이쁜이~~!!"

눈을 비비며 거실로 나오는 둘째에게 말했다.

부스스한 머리카락이 한 짐이다.

나는 밤새 정신없이 잤을

그 더부룩한 머리카락을 만지는 걸 좋아한다.


쿠키를 보고 있던 나는 물었다.

"베이킹파우더가 부족한 거 같은데.."

"잉?"

둘째가 번쩍 눈을 뜨더니

반짝이는 눈으로 쳐다보며 말한다.

"베이킹파우더를 왜 넣어?"


"헉!!

안 넣으면 딱딱하잖아."


"쿠키는 원래 딱딱한 거야."

둘째는 모르겠다는 듯 씩 웃는다.


"그 '딱딱'이 그 '딱딱'이 아닐 텐데."

"쿠키는 원래 딱딱한 거라니까."라며

둘째는 빵 터지며 웃는다.


쿠키의 달인인 첫째가 나온다.

첫째는 메인 재료를 불문하고

찐득하면서도 촉촉하고 바닥이 바삭거리는

정확히 멈춰야 할 지점까지 구운 쿠키를 만들어 낸다.

오랜 시간 숙달된 능력의 소유자다.

이런 능력은 그만큼의 실패와 경험치의 누적을 의미한다.

"쿠키 레시피 좀 알려줘."라고 첫째에게 부탁했다.

둘째는 그런 말에 마뜩잖은 표정이다.


첫째는 시큰둥하게 말한다.

"인터넷에 나와."


그럴 줄 알았다.

하긴, 레시피를 알려준다고 해도

제대로 된 쿠키를 굽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처음 오븐을 샀던 날,

이십 대 중반이었던 것 같다.

거대한 쿠키 몬스터들은 내 오븐을 점령하고도 모자라

그 거대하게 부푼 반죽을 바닥에 투둑투둑 흘리고 있었다.

지옥불의 악마들처럼 부글거리며 검고 지워지지 않는 흔적들을 오븐에 남겼다.


가끔은 고구마 케이크의 포실포실한 질감은

매쉬드고구마처럼 변하기도 했다.

요즘은 제과제빵을 하지 않는다.

좋아하지 않아서는 아니다.

잘 안 먹을 뿐이다.


그러니

쿠키 만들기에 관해서는,

내가 중단한 바로 그 지점까지만

나는 알아듣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마스카포네 치즈 선택이

티라미수 케이크 만들기에서 가장 중요한 지점이라는 걸 안다.

흑설탕과 황설탕과 백설탕의 비율과

사용방법이 제각각이라는 것도 안다.


둘째는

"엄마 달걀 사줘."

"그래."

"언제 와?"

"응 오늘"

"오늘 언제?"

이런, 택배 도착시간 확인 고문이 다시금 시작되었다.

"빨리 올 거야."


"친구들에게 나눠줄 쿠키를 연습하는 중이야."

갑자기 실패작은 연습용으로 포장되었다.


"버터가 별로 없을 텐데."

"냉동실에 많잖아."

"그게.. (연습용으로 쓰기엔 너무 좋은 버터라고..) 그렇게 쓸게 아닌데..."

"맨날 냉동실에 있잖아."

"아니.. 저... 저기요... 여보세요.."


덕분에 한동안 달걀과 버터와 설탕을 공물로 바쳐야 한다.

번제물들은 심야의 쿠키 굽기 제의로

우주 저 멀리 안드로메다에 바쳐질 것이다.

그리고 나는 제물을 바친 대가로

설거지통 가득 쌓인 스테인리스 그릇들을 하사 받을 것이다.

당분간 우주적 제의가 진행될 예정이다.


나의 이상형은

제물을 준비하는 포지션이 아니다.

우파니샤드 전권을 이미 열 살 이전에 다 외운 브라만,

마법의 레시피를 보유한 능력자다.

언제 무엇을 얼마나 넣고,

어디에서 시작하고 어디에서 멈춰야 하는지

축적된 실패 끝에 체득한 자.

그런 이는 모든 것을 너무 쉽게 해낸다.

최상위 레벨 전문가의 특징이기도 하다.

그리고 말을 잘 알아듣는다.

말을 알아듣는다는 건, 내 수준까지는 이미 해봤다는 의미다.


실패를 실패라고 인정하고

재빨리 수정한다.


이 지점이 포인트다.

취약성을 허용하는 남자라니.

그러니 멋지지 않을 수가 없다.


현재의 태도는

미래를 만든다.


그런 센스가

내 마음에 아주 쏙 든다.


그 덕에 그런 자리에 갔을 것이다.

우주 제의의 최고 마스터


그리고 쿠키가 완성되면

개수대에는 아무것도 없다.


이런 자연스럽고 부담없는 연결성이라니.

쿠키 굽기와 설거지의 하모니.


그 과정을 보고 있노라면

그 설계 순서 자체에 감탄을 하게 된다.


섹시하다.


어쩔 수 없다.


인정.


수만 번의 시행착오 끝에 완성된

일련의 쿠키 제의의 과정일 것이다.


그러니 멋지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쿠키 만들기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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