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의 시스템 업데이트 시즌에 가장 많이 뜨는 알람이다. 현타.
살다 보면
갑자기 화면 한가운데
경고창 같은 것이 뜰 때가 있다.
삶이 갑자기 멈추고
운이 교차하는 시기다.
누구는 번아웃이라하고,
누구는 중년의 위기라고도 하고,
또 누구는 우울증이라고 한다.
그 모든 것들은 엄밀하게는 제각기 다르겠지만,
분명 비슷한 결을 지닌 구간이 있다.
내면의 운영 체계가 바뀌는 시즌.
그때 가장 많이 뜨는 알람이 있다.
현실 자각 타임.
줄여서
현타라고 부른다.
말은 짧고 가벼운데
실제로는 그렇게 가벼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대개
내가 보고 싶었던 세계와
실제 작동하는 현실이 충돌할 때 발생한다.
내가 믿고 있던 것,
원칙, 기준, 기대치.
내가 곧 도착할 줄 알았던 장면,
지금껏 유지되어 왔으니 앞으로도 계속될 거라고 생각했던 일상,
내가 이미 이해하고 있다고 믿고 있던 나 자신.
그 모든 것들 위로
어느 날
갑자기 새로운 현실이 덮쳐오는 순간이 있다.
그 순간
사람은 멍해진다.
현타는 단순한 실망이 아니다.
지금까지 사용하던 인식 체계로는
더 이상 현재를 처리할 수 없다는 신호.
업데이트가 필요하다는 통보다.
허무함이나 자괴감을 넘어
인식 구조가 흔들리는 일이다.
가끔 사람들은 현타를
실패나 퇴행처럼 말한다.
정신 차리라는 뜻으로도 쓰고,
유난 떨지 말라는 투로도 말한다.
그러나, 나에게 현타는
업데이트 직전의 경고이자
업데이트 도중 계속 쌓여가는 알람이다.
재설치 직전의 멈춤.
그 멈춤의 체감은 썩 유쾌하지 않다.
예를 들어 관계에 대한 해석.
타인에 대한 이해와 수용.
어느 정도는 통하고 있다고 믿었고,
적어도 최소한의 정합성은 있으리라 여겼고,
내가 읽은 신호가 완전히 틀리지는 않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날
현실이 대답한다.
아니라고.
그 순간,
혼란에 빠진다.
현실은 소용돌이가 되어서 손에 잡히지 않고,
구조를 잃은 채 모든 것이 흔들린다.
정지된 시간 속에서
해석 체계 전체를 의심하게 된다.
내가 잘못 본 건가.
내가 나이브한 건가.
내가 과대평가한 건가.
내가 혼자 너무 멀리 간 건가.
그 순간마다
현타가 온다.
그것은 내가 더 이상 지금의 방식으로는
나아갈 수 없는 임계점에 도달했다는 뜻이다.
이제는 조금 더 정교한 현실 감각을 장착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성만으로는 가닿을 수 없는 곳으로 가기 위해
다른 에너지를 사용할 줄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스스로에 대한 믿음들은 균열이 가고,
내 안의 결핍을 보게 하는 현타가 왔다.
누군가를 이해했다고 믿었을 때,
그의 가능성을 보고 있었다고 여겼을 때,
타인은 끝내 타인이라는 현타가 왔다.
열심히 노력하면
원하는 것을 다 이룰 수 있다고 믿었을 때,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운의 흐름에 휩쓸릴 수 있다는 현타가 왔다.
기분은 좋지 않다.
대체로 초라했고,
좀 민망했고,
내가 너무 허술했던 것처럼 느껴졌다.
현실에서 원하는 것을 다 이루었다고
생각할 정도로 높이 올라갔던 만큼
추락의 고통은 극심하다.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업데이트 기간을 버티고 있다.
알람은 계속 쌓인다.
새벽에 뜨는 에러 메세지처럼,
저장 안 된 문서가 날아가기 직전의 경고창처럼,
부팅은 되는데
뭔가 이상하게 느려진 시스템처럼.
뭐라 말로 할 수 없는
그 미묘하고도 선명한 감각이 말한다.
잘못되었다고.
네가 갈 곳은
그 방향이 아니라고.
나침반의 바늘은 빙글빙글 돌아간다.
내가 서 있는 곳이
땅인지, 하늘인지, 심해인지
구분조차 되지 않는다.
그래서 알람을 하나씩 처리한다.
심해를 잠수하거나,
바닥을 파거나,
브런치의 해변을 산책한다.
그러다 문득
현실과는 괴리된 이런 시간 속에서
다시 현타가 온다.
"난 지금 여기서
뭘하고 있는 거지?"
"어째서 이런 일에
능력을 허비하고 있는 거지?"
"이건 꿈인가 현실인가?"
"휴우..."
한숨을 쉬고
다시 알람을 하나씩 처리한다.
그래.
놀랄 일은 아니다.
시스템 업데이트 시즌에는
원래 가장 많이 뜨는 알람이니까.
현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