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나를 현재에서 살아내는 방법이다.
* 이 글에는 영화 「인셉션」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 「인셉션」의 마지막 장면에 대해서는
오랫동안 해석이 분분했다.
돌아가는 팽이.
멈출 듯 멈추지 않는 움직임.
그리고 갑자기 끊기는 화면.
관객들은 물었다.
저 팽이는 멈췄을까.
주인공 코브는 현실로 돌아온 걸까.
아니면 여전히 꿈속에 있는 걸까.
그런데 우리가 간과했던 사실이 있다.
그 팽이는 원래 코브의 토템이 아니다.
코브의 아내였던 말의 토템이다.
그러므로 팽이가 멈추든 멈추지 않든,
그것만으로 코브의 현실을 판정할 수는 없다.
더 중요한 것은
코브가 더 이상 팽이를 보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는 팽이를 돌려놓고,
아이들에게 걸어간다.
그 순간 코브에게 중요한 것은
현실인지 꿈인지에 대한 판정이 아니라,
마침내 집착을 내려놓고
자신이 돌아가야 할 자리로 향했다는 사실이다.
어쩌면 관객들은
코브가 내려놓은 것을
끝까지 붙잡고 있었던 셈이다.
팽이가 멈추는지 아닌지보다 중요한 것은
그가 더 이상 그것을 확인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것이야말로
「인셉션」의 마지막 장면이 남긴
가장 놀라운 반전인지도 모른다.
만트라는 영화 「인셉션」의 토템과 닮아 있다.
남에게 설명하기 위한 물건이 아니라,
내가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 확인하기 위한 사적인 기준이다.
그래서 만트라는 공개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어떤 문장은 마음속에 숨겨두었을 때 더 오래 힘을 갖는다.
타인의 해석이 닿지 않는 곳에 있을 때,
그 문장은 나를 가장 정확히 깨운다.
순간순간 반복하는 만트라가 있다.
십 년 동안 쌓아온 만트라의 탑은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나는 거의 십 년을 주기로
나의 만트라를 업데이트해 왔다.
오늘 새로운 만트라를 만들었다.
그것은 하나의 단어일 수도 있고,
하나의 문장일 수도 있고,
여러 개의 문장일 수도 있다.
그 의미는 '미래의 나'이자
'이미 실현된 나'이다.
그러니,
만트라는
미래의 나를
현재에서 살아내는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