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의 깊이를 다루는 유형에 대하여.
나의 솔메이트는 명상센터 주지스님이다.
스님은 아니다. 이미지가 그렇다는 말이다.
내가 그를 좋아하는 이유는
투명해서다.
그렇다고 완전히 투명한 건 아니다.
겉으로 보면 투명하게 보일정도로
그 깊이를 평소에는 짐작하거나 알 수 없다.
이건 미묘하게 다른 상태에 대한 이야기다.
투명하지 않고, 뭔가 속으로 감추는 사람은 불편하다.
그저 나의 성향이다.
솔메이트는 투명해보인다. 그리고 딱히 감추는 것도 없어보인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아래 검은 심해가 있다.
그래서 평소에는 그 깊이에 신경쓰이지 않고 불편하지도 않다.
일상에서 그 심해로 인해 나를 건들이거나 하지 않는다.
그러지 않는 태도를 지닌 사람이다.
난 그래서 솔메이트를 좋아한다.
속이 비어서 투명한 사람이 아니라,
속이 깊어도 탁하지 않은 사람이다.
겉으로는 맑아 보이고
공연히 감추지 않고
자기 안에 깊은 것이 있어도 그걸 타인에게 휘두르지 않고
일상에서 상대를 불안하게 만들지 않고
자기 심연을 자기 안에서 잘 다룰 줄 아는 사람이다.
나는 깊이를 가진 이를 좋아한다.
그리고 그 깊이를 잘 다룰 줄 아는 능력이 있는 사람을 좋아한다.
어떤 이들은 자기 안에 심해가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어떤 이들은 그것을 알지만 외면한다.
어떤 이들은 알지만 그 경계에서 덮으려 한다.
어떤 이들은 가끔 대면한다.
그리고 어떤 이들은 그것을 알고, 잘 다룬다.
이것은 선악의 문제가 아니다.
삶의 과업이라는 식으로 말하고 싶은 것도 아니다.
다만 사람은 대개 자신이 도달한 상태만큼만 타인의 상태를 볼 수 있다.
나는 내면 상태가 정돈된 사람이 편하다.
정돈된 것처럼 외양만 꾸민 사람은 불편하다.
어쩌면 그것은 내가 타인의 심연에 잘 끌려들어가는 성향을 지녔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타인의 심연은 타인의 것이다.
원래는 거기까지여야 한다.
그러나 나는 내가 그 안으로 쉽게 끌려들어갈 수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안다.
그래서 더 분명해진다.
나는 깊은 사람을 좋아하는 것이라기 보다,
자기 깊이를 맑게 다룰 줄 아는 사람을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