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안이비설신의(無眼耳鼻舌身意) 무색성향미촉법(無色聲香味觸法)
나의 솔메이트는 명상센터 주지스님이다.
스님은 아니다.
이미지가 그렇다는 말이다.
그는 젊을 때 가수였다.
그래서 노래 가사를 외우는 건 천재적이다.
언어에 구애받지 않을 정도로.
솔메이트와 탕수육을 먹고 있었다.
그는 우물거리듯 말했다.
"이상하게 반야심경은 가사가 안 외워지더라."
"잉? 그럴 리가??"
"중간중간은 외우는데 곡 전체를 부르라면 안되더라고."
"설마."
"진짜야. 신기하지?"
나는 조금 놀랐다.
가사를 못 외우는 곡이 있다는 것이 더 신기했다.
언어 능력에 있어서는 나를 능가하는 재능의 소유자이기 때문이다.
그가 말했다.
"근데 그거 한 구절만 찾아봐도 몇 시간은 휘리릭 지나가."
"그렇지."
잠시 뒤 그가 말했다.
"없다는 거 있잖아."
"나 그 부분이 좋더라."라고 대답하며
나는 반야심경을 흥얼거렸다.
"눈도 귀도 코도 혀도 몸도 의식도 없으며~"
"그런데 그 없다는 게 뭔지 알아?"
"잉?"
솔메이트는 탕수육 한 조각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그걸 내 앞에 보여주며 물었다.
"이건 있어?"
"있지."
그는 그걸 입에 넣으며 물었다.
"그럼, 이건 있어?"
"있지."
그는 입 안에서 탕수육을 씹으며 물었다.
"그럼, 이건 있어?"
나는 고개를 양쪽으로 갸웃거리며 대답했다.
"있지.
없나?
있지."
그는 탕수육을 꿀꺽 삼키고 물었다.
"그럼 이젠 없어?"
나는 다시 고개를 갸우뚱하며 대답했다.
"없나?
있지.
없는 건가?"
그는 씌익 웃으며 물었다.
"그럼 소화를 다 시키고 나면 없어?"
나는 대답했다.
"있지."
그는 다시 물었다.
"그럼 몸 밖으로 나가고 나면?"
나는 대답했다.
"아, 그렇구나!"
그는 웃으며 말했다.
"그게 없다는 것의 의미야.
가끔 보면 부처는 물리학자 같아."
나는 웃었다.
"그러게. 그렇네."
그는 다시 말했다.
"우주의 구조를 그때 어떻게 알았지?"
나는 대답했다.
"응 지혜를 얻으면 구조가 보이니까 알았겠지.
온 세상은 도형으로 보이잖아."
반야심경을 무한반복으로 듣고 있다.
가사 하나하나가 새롭게 들린다.
반야심경의 “무안이비설신의, 무색성향미촉법”에서 말하는 “없다”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눈도, 귀도, 맛도, 감촉도,
심지어 내가 붙잡고 있는 생각과 감정조차
고정된 실체로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에 가깝다.
탕수육도 분명 있었지만,
접시 위에 있을 때와
입안에서 씹힐 때와
삼켜진 뒤와
소화된 뒤가 모두 같을 수는 없다.
분명 있었으나,
붙잡으려 하면 이미 다른 것이 되어버린다.
그러므로 반야심경의 “무”는
모든 것이 조건 따라 잠시 생겨나고 이름 붙여지고 작용하다가
다른 상태로 흘러간다는 사실을 가리킨다.
있음과 없음 어느 한쪽으로도 완전히 고정되지 않는
그 유동성을 정확히 보는 것,
아마 공은 바로 그것에 가까울 것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jmrBb8AqfL8&t=6765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