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는 지진 경보, 그 남자 004

낯선 이와의 첫 만남은 그렇게 깊고 어두운 장소로 미끄러져 내렸다

by stephanette

할 수 없이, 아껴둔 장소로 갔다.
언젠가 한 번쯤은 꼭 가보고 싶었던 곳이었다. 나를 오래 아는 사람과, 적어도 내 침묵이 낯설지 않은 사람과.


방금 전까지 걷고 있던 번잡한 거리와는 전혀 다른 세계 같았다.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공기의 결이 바뀌었다. 바깥은 여전히 밝고 시끄러웠는데, 이쪽은 어둡고 조용했고, 적막이 얇은 막처럼 가라앉아 있었다. 그 차이가 조금 과장되어 보일 정도였다.


“띠링.”

문을 밀자 출입문에 달린 작은 황금색 벨이 흔들렸다. 맑고 작은 소리였다. 너무 작아서 오히려 더 또렷했다. 고요한 장소에서는 사소한 금속성의 울림조차 이상하게 오래 남는다.


“아직 장사하나요?”


“네. 들어오세요.”

안으로 한 걸음 들어서는 순간, 나는 잠깐 멈췄다. 벽도 천장도 내부의 집기들도 전부 매트한 블랙이었다. 빛을 반사하지 않는 검은색은 생각보다 훨씬 깊었다. 검은 창틀에 둘러싸인 유리창은 바깥의 채도를 거의 허락하지 않았다. 거리는 분명 저 밖에 계속 이어지고 있었지만, 이곳은 이미 다른 시간대 안에 들어와 있는 것처럼 보였다.


손님은 아무도 없었다.

테이블은 컸고, 다른 테이블과의 간격도 넓었다. 등받이가 높은 의자는 사람을 편하게 앉히기보다, 각자의 자리를 또렷하게 고립시키는 쪽에 가까워 보였다. 앉으면 시야는 열리는데 동시에 막히는 곳. 누군가와 마주 앉기에는 지나치게 정돈되어 있었고, 그래서 더 도망칠 곳이 없어 보이는 공간이었다.


나는 자리에 앉은 채 검은 코트를 벗었다. 그는 곧바로 손을 내밀며 코트를 달라고 했다. 아주 자연스러운 말투였다. 사회성이 발달한 사람들이 조금도 어렵지 않게 해내는 종류의 친절. 매너가 좋은 사람의 손짓.


나는 웃으면서 거절했다.

“아니, 괜찮아요.”


그리고 코트를 의자 위에 넓게 펼쳤다. 무심한 척했지만, 거의 반사적인 동작에 가까웠다. 긴 옷자락은 내 주위로 얇은 검은 선을 만들었고, 나는 그 위에 다시 앉았다. 돌이켜보면 그것은 습관이라기보다 본능에 가까웠다. 몸이 먼저 그 자리를 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그 모습을 보고 아주 잠깐 고개를 갸웃했다. 웃지는 않았지만, 묻지는 않는 표정이었다. 그는 자신의 코트를 옷걸이에 단정하게 걸었다. 군더더기 없는 동작이었다. 그런 종류의 남자들이 있다. 누가 보지 않아도 자기 물건을 반듯하게 정리하고, 손이 닿는 모든 것을 지나치게 자연스럽게 제자리에 놓는 사람. 아이스링크장이었다면 그는 아마 상대의 스케이트 끈을 직접 묶어주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일에 조금도 망설이지 않았을 것이다. 돕는 일에 익숙한 사람처럼. 아니, 돕는 자리로 들어가는 일을 좋아하는 사람처럼.


그는 매우 친절했다. 그리고 다정한 사람의 몫처럼 대화를 주도했다. 이상했다. 누구를 만나든 대개는 내가 맞추는 쪽이었다. 상대의 말 속도를 따라가고, 빈칸을 메우고, 침묵의 질감을 조절하고, 공기가 무거워지지 않게 말의 방향을 조금씩 바꾸는 쪽. 그런데 그날 밤은 배역이 바뀐 영화 안에 들어온 기분이었다. 익숙한 자리에 앉아 있는데도 내가 내 역할을 잃어버린 느낌. 그는 너무 자연스럽게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고, 그래서 더 낯설었다.


그는 매트한 의자 등받이를 배경으로 정중앙에 앉아 있었다. 그 장면은 거의 한 장의 사진 같았다. 일상에서는 자주 나오지 않는 구도였다. 검은 배경, 넓은 테이블, 비어 있는 실내, 정중앙에 앉은 한 사람. 그는 그 공간과 지나치게 잘 어울렸다. 마치 원래 그곳에 있어야 할 사람처럼.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장면의 압도감과는 달리 그가 하는 이야기들은 오래 붙잡히지 않았다. 분명 듣고 있었다. 그는 친절했고, 말의 흐름도 좋았고, 듣는 사람을 편하게 만들 줄 아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런데 문장들이 이상하게 손안에 잡히지 않았다. 나는 거의 속기사처럼 그의 말을 기억해두려 했다. 방금 한 말을 놓치지 않으려고, 그 목소리와 내용과 순서를 머릿속에 붙잡아두려 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것들은 금세 접혀버린 시간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형체를 잃고, 순서를 잃고, 방금 전의 것인데도 이미 지나가버린 것처럼 흐려졌다.


시간은 흘러가고 있었다.
나는 그의 말을 들으면서도, 동시에 방금 전에 그가 했던 말들을 붙잡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대화를 나누는 중인데도 뒤늦게 따라가는 기분. 그는 지금 여기에 있었고, 나는 방금 전의 문장을 잃지 않으려 안쪽에서 조금 늦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 미세한 시간차가 이상하게 나를 지치게 했다.


넓은 테이블이라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작은 컵과 그릇들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세팅되어 있었다. 너무 정돈된 배치는 사람을 편안하게 만들기보다 오히려 자세를 고치게 만든다. 이 공간은 모든 것을 제자리에 두고 있었다. 사물도, 조명도, 거리도, 침묵도. 그래서 오히려 사람에게 집중하기 좋은 곳이었다. 너무 좋은 곳이었다. 어쩌면 장소의 선택이 잘못되었을지도 모른다. 그곳의 명도와 질감, 그리고 공간감은 사람에게 집중하기에 지나치게 적합했다. 상대에게도, 나 자신에게도.


밖의 소음이 닿지 않는 곳, 시선이 분산되지 않는 곳, 말이 흩어지지 않는 곳. 그런 곳에서는 사소한 표정 하나, 손의 위치 하나, 말의 속도 하나가 과장될 정도로 또렷해진다. 사람이 사람을 너무 선명하게 보게 되는 장소. 그날 밤 내가 들어간 곳은 아마 그런 장소였다.


낯선 이와의 첫 만남은 그렇게 깊고 어두운 장소로 미끄러져 내렸다. 내려가는 동안에는 내려가고 있다는 사실을 잘 모른다. 바닥이 기울어졌다는 것을 알아차릴 즈음엔 이미 한참 안쪽이다. 그날 밤도 비슷했다. 나는 그저 자리에 앉아 있었고, 그는 맞은편에서 친절하게 말하고 있었고, 테이블 위의 컵과 그릇은 완벽하게 정렬되어 있었다. 겉으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어떤 장소들은 사건보다 먼저 사람의 감각을 붙잡는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바로 그런 장소 안에서 더 또렷해진다. 그날 밤, 내가 잘못 들어간 것은 식당이 아니었다. 조금 더 늦게야 알게 되었지만, 나는 이미 그 사람의 리듬이 더 잘 들리는 어둠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그는 그 장소와 결탁한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자리를 차지했다.

나는 그 안에서 점점 더 어두운 쪽으로 밀려났다.

그리고 그 장소를 고른 것은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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