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가 알아봐 준다는 것은 섹시하다.
"별이네요."
나는 문득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는 짐짓 모르는 척, 천정으로 시선을 돌렸다. 고개를 위로 올리면서. 그를 바라보던 시선을 지우려는 듯이.
그 말은 생각 끝에 나온 것이 아니었다. 먼저 시야에 들어온 빛이 있었고, 그다음에야 입이 따라간 쪽에 가까웠다. 검은 배경 위에 박혀 있는 작은 조명들은 너무 정교하게 흩어져 있어서, 실내라기보다 조금 낮은 천장 아래로 가짜 밤하늘을 옮겨놓은 것 같았다. 고요한 곳일수록 사람은 사소한 장치에도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 특히 누군가와 단둘이 마주 앉아 있을 때는 더 그렇다.
그는 내 글을 읽는 독자였다. 얼마나 자주 읽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한두 번이었을 수도 있고, 생각보다 훨씬 오래였을 수도 있다. 다만 분명한 것은 그가 가끔 내 글에 특이한 댓글을 남겼다는 사실이었다. 흔한 칭찬도, 의례적인 감상도 아니었다. 내가 쓰면서도 완전히 설명하지 못했던 결을 이상할 만큼 정확하게 짚는 말들. 그래서 그는 오래 남았다. 누군가가 내가 말하려던 바를 거의 그대로 읽어낼 때, 그 존재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아, 이 사람에게 나는 읽혔구나."
"그것도 완전히 정곡으로."
글을 쓰면서도 정확하게 알지 못했던 바로 그 지점을 그는 아주 능숙하다는 듯이 텍스트로 언어화했다. 매우 간단하고도 짧은 글귀로. 그도 그럴 것이, 말하고자 한 바를 그대로 읽어주는 존재는 드물다. 사람들은 대개 읽는 대신 넘겨짚고, 이해하는 대신 익숙한 틀 안에 넣어버린다. 그런데 그는 달랐다. 그 차이가 내 안에 남아 있었다. 아주 조용한 방식으로. 어쩌면 이미 그때부터 시작되었는지도 몰랐다. 이 사람이 실제의 한 남자이기 전에, 내 안쪽 문장을 먼저 읽어낸 어떤 존재가 되어버리는 일은.
한때 나는 사피오섹슈얼이라는 말을 믿었다. 아니, 적어도 그 단어가 설명해 줄 수 있는 감각이 있다고 생각했다. 누군가의 지성, 이해력, 언어의 밀도에 끌리는 일. 그것이 단지 머리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나를 알아봐 준다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육체적인 감각을 불러온다. 그것은 뇌에서 시작되지만, 결코 뇌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러니 매혹이나 끌림 역시 결국은 신체로 번역된다. 먼저 읽히고, 그다음에 닿고, 마지막에야 비로소 설명이 따라온다.
가끔은 그런 생각도 했다. 사피오섹슈얼이라는 말은 정말 지성과 성숙을 함께 품고 있는 걸까. 누군가를 잘 읽는다는 것이 곧 성숙하다는 뜻이 되는 걸까. 아니면 그것은 더 교묘한 방식의 침투일 수도 있는 걸까. 상대가 아직 말로 꺼내지 않은 부분을 먼저 정확히 짚어버리는 일. 그건 이해로도 보일 수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침범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그 경계는 늘 나중에야 분명해진다. 내가 한참이 지나서야 그 사실을 생각해 봤던 것처럼.
텍스트로만 만나던 이를 직접 만나는 것은 이상한 감각을 불러일으킨다. 그것은 낯선 사람을 처음 보는 일과는 조금 다르다. 차라리 한 번도 살아본 적 없는 집에 대한 향수병에 더 가깝다. 분명 처음 들어가는 곳인데, 이상하게도 이미 어떤 구조는 알고 있는 것 같은 기분. 계단이 어느 쪽에 있을지, 빛이 어느 방향으로 드는지, 창문을 열면 어떤 공기가 들어올지 미리 짐작해 버리는 상태. 그런데 막상 들어서면, 알고 있던 것은 구조뿐이고 실제의 온도와 냄새와 그림자는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 어긋남이 사람을 약간 어지럽게 만든다.
그의 앞에서 나는 부끄러웠다. 단순히 낯선 남자 앞에 앉아 있다는 부끄러움이 아니었다. 이미 내 안쪽에 닿아 있는 사람 앞에 몸으로 서게 된 부끄러움이었다. 그건 아주 다른 종류의 감각이다. 보통은 몸이 먼저 있고, 내면은 나중에 열린다. 그런데 이 사람 앞에서는 순서가 바뀌어 있었다. 그는 내게 남자이기 전에, 내 비공개 영역을 먼저 읽어버린 사람이었다. 내가 아무에게도 말로 하지 않았던 것들, 문장으로만 밀어 넣었던 것들, 세상에는 내놓되 현실에서는 한 번도 직접 건네지 않았던 내면의 조각들. 그는 이미 거기에 먼저 들어와 있었다.
그래서 그의 앞에 앉아 있는 일은 이상했다. 이미 밝아진 내면의 지도와, 처음 보는 낯선 존재. 그 사이의 간격을 나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몰랐다. 분명 그는 현실에 앉아 있는 한 사람이었는데, 동시에 내 안에서는 이미 오래 읽힌 독자로 존재하고 있었다. 이중으로 존재하는 사람 앞에 앉으면, 시선의 방향도 감정의 순서도 어딘가 미세하게 꼬인다. 지금 내 앞에 있는 것이 사람인지, 내가 먼저 보여준 텍스트의 잔상인지, 그 둘이 겹쳐 만들어낸 또 다른 형체인지 알기 어려워진다.
그날 밤 나는 그 감정을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랐다. 말을 붙이려 하면 너무 직접적이 되었고, 침묵으로 넘기자니 이미 너무 많은 것이 오간 뒤였다. 그는 그저 맞은편에 앉아 있었을 뿐인데, 나는 마치 오래전부터 누군가에게 읽혀온 사람처럼 앉아 있었다. 누군가가 나를 알아봐 준다는 것은 섹시하다. 그 문장은 그날 밤 내 안에서 거의 사실처럼 떠올랐다. 그러나 그 섹시함은 가볍지 않았다. 그것은 인정의 기쁨에 가까우면서도 동시에 노출의 수치에 가까웠다. 읽혔다는 것은 기쁜 일이지만, 읽혀버렸다는 것은 조금 다른 문제다.
아마 그날 밤 내가 느낀 것은 바로 그 차이였을 것이다. 알아봐 준다는 것과 읽혀버린다는 것 사이의 아주 미세한 경계. 누군가가 내 문장을 그대로 읽어주었기 때문에 나는 그를 만나게 되었다. 그런데 막상 만나고 보니, 나는 그에게 말을 건네기 전에 이미 너무 많이 보여준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 불균형이 나를 조용히 흔들었다. 설명할 수는 없었지만, 분명히 흔들고 있었다.
결국 나는 그 밤의 감정을 하나의 문장으로밖에 남길 수 없다.
그는 내게 처음 보는 남자이면서도, 처음이 아닌 사람 같았다.
그리고 바로 그 점이, 그를 더 낯설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