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핑 좋아한다. 그러나 수십 년 간직해 온 옷은 따로 있다.
새로 나온 원두를 샀다. 나는 풀시티나 프렌치 로스팅을 애정한다. 묵직한 바디감, 깊게 눌린 향, 입안에 오래 남는 쓴맛 쪽을 좋아한다. 혀에 닿는 순간 바로 설명되는 맛보다, 조금 늦게 올라와 오래 머무는 쪽을 더 신뢰한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이번에 들여온 원두는 미디엄 로스팅이다. 거의 마셔본 적도 없고, 대체로 선호하지 않는 쪽이다. 사람은 가끔 자신이 좋아하지 않는다고 믿는 쪽으로 손을 뻗는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라기보다, 그날의 감각이 평소와는 조금 어긋나 있었기 때문에. 나중에 돌아보면, 그런 작은 어긋남들이 대개는 더 큰 이야기의 입구가 된다.
커피 봉투를 개봉하자 향이 먼저 퍼졌다. 나는 그 순간을 좋아한다. 신선한 원두를 들이려고 애쓰는 이유도 사실은 거기에 있다. 아직 물에 닿지 않았고, 아직 갈리지도 않았고, 아직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았는데도 이미 방 안의 공기는 달라진다. 부드러운 곡물과 초콜릿의 향. 너무 달지 않으면서도 어딘가 방심하게 만드는 종류의 향기였다. 나는 그라인더에 원두를 넣었다. 계량은 하지 않는다. 정확하게 맞추는 일보다 손이 기억하는 쪽을 더 믿는다. 오랜 시간 익숙해진 방식은 때때로 수치보다 더 정확하다. 손끝은 늘 머리보다 먼저 알고, 머리는 늘 조금 늦게 그 사실을 확인한다. 떨어지는 원두에서 부서져 나온 향은 사방으로 가볍게 튕겼다. 보이지 않는 것들은 언제나 그런 식으로 먼저 퍼진다.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핸드드립을 했다. 평소처럼 거의 기계적으로 점드립을 하다가, 문득 물로 둥글게 적시고 삼십 초쯤 기다리는 과정을 놓쳤다는 걸 깨달았다. 아주 사소한 실수였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작은 누락이 마음에 오래 걸렸다. 나는 멈추지 않고 그대로 드립을 이어갔다. 가느다란 물줄기를 바라보면서. 어떤 날은 정확함보다 흐름이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미 한 번 어긋난 리듬은 억지로 바로잡으려 할수록 오히려 더 부자연스러워진다. 처음 놓친 삼십 초를 되찾겠다고 안간힘을 쓰는 순간, 커피는 더 이상 커피가 아니라 실패를 수습하려는 손의 조바심이 된다. 사람 사이도 가끔 그렇다. 처음 어긋난 박자를 인정하지 못하면, 그다음부터는 모든 조정이 더 늦어진다.
프렌치 로스팅을 애정하는 이유는 결국 바디감 때문이다. 원두를 산 카페가 강배전 원두로 유명하다는 사실도 한몫했을 것이다. 그래서 이번 원두는 조금 의외였다. 미디엄 로스팅인데도 산도가 세지 않았다. 부드러운 목넘김이 먼저 왔고, 향은 그 뒤를 조금 늦게 따라왔다. 나는 일부러 뜨거운 채로 마셨다. 얼음을 넣으면 산미가 더 또렷하게 올라올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이 상태가 좋았다. 너무 뜨겁지도, 너무 식지도 않은 상태. 아직 무언가가 본색을 다 드러내기 전의 온도. 사람은 늘 명확한 것을 원한다고 말하지만, 실제로 더 오래 남는 것은 대개 이런 중간 지점이다. 아직 다 밝혀지지 않았고, 그렇다고 완전히 숨겨져 있지도 않은 상태. 무언가가 곧 모습을 드러낼 것 같은데도 아직은 이름을 붙일 수 없는 순간.
맛없는 커피를 좋아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안 마시는 것도 아니다. 대체로 주어지는 대로 받는 편이다. 취향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것을 굳이 입 밖으로 자주 꺼내지 않을 뿐이다. 사람들은 대개 말하지 않으면 없는 줄 안다. 그러나 드러내지 않는 것과 존재하지 않는 것은 전혀 다르다. 침묵은 취향의 부재가 아니라, 때로는 취향을 오래 감춰두는 방식이 된다. 나는 좋은 것을 정확히 알고 있고, 싫은 것도 대개 분명히 안다. 다만 그것을 쉽게 설명하지 않을 뿐이다. 어쩌면 설명하는 순간, 그것이 너무 빨리 현실이 되어버릴까 봐. 말해지는 순간부터 사람의 기호는 누군가의 판단 안으로 들어가고, 그때부터는 더 이상 혼자만의 감각으로 남아 있기 어렵다.
나는 쇼핑을 좋아한다. 옷도 좋아한다. 스무 살 무렵에는 거의 매일 옷을 샀다. 계절이 바뀌지 않아도 샀고, 특별한 약속이 없어도 샀다. 필요해서라기보다, 어쩌면 계속 다른 사람이 되어보고 싶어서였는지도 모른다. 옷은 가장 빠르게 사람이 달라졌다고 믿게 만드는 물건이니까. 천의 질감, 색의 온도, 단추의 위치, 실루엣, 허리를 지나가는 선 하나만으로도 어제와는 조금 다른 존재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많은 옷들 가운데 지금까지 남아 있는 것은 많지 않다. 유행은 지나갔고, 취향도 바뀌었고, 몸도 예전 같지는 않다. 좋아서 샀던 것들조차 시간이 지나면 대개 자기 자리를 잃는다.
그래서 이상하다. 내가 수십 년 가까이 간직해온 옷은 따로 있다는 사실이.
그것은 한 번도 사지 않았던 옷이다.
붉은 색 체크무늬 셔츠.
내 손으로 계산한 적도 없고, 내 옷장에 걸어본 적도 없고, 한 번도 내 것이었던 적이 없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어떤 옷들보다 훨씬 선명하다. 사람은 가끔 자기 것이었던 물건보다, 끝내 자기 것이 되지 못한 물건을 더 오래 기억한다. 소유하지 못했기 때문에 닳지도 않고, 버리지도 못하고, 현실의 시간 안으로 완전히 들어오지도 못한 채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옷은 사는 순간부터 조금씩 현실이 된다. 결제와 동시에 감정의 온도가 떨어지고, 옷은 곧 물건이 된다. 그런데 사지 못한 옷은 다르다. 그것은 물건이 되지 못한 채 계속 이미지로 남는다. 시간 속에서 낡지 않고, 얼룩지지 않고, 이상하게도 계속 처음 본 순간의 색을 유지한다.
그 붉은 체크무늬 셔츠가 내게 꼭 그랬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내가 오래 간직한 것은 셔츠가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그 셔츠를 입고 있었던 사람, 혹은 그 셔츠를 처음 봤던 순간의 공기, 혹은 그때의 내 몸이 아주 짧게 알아차렸던 어떤 리듬. 옷은 늘 사람의 바깥에 걸쳐 있지만, 이상하게도 어떤 옷은 사람보다 더 깊게 남는다. 직접 만질 수 없었던 것일수록 더 그렇다.
내가 원했던 것은 취향에 맞는 사람이 아니라, 흔들리게 하는 사람에 대한 회피가 아니었을까. 깊이 들어가고 싶으나 들어가고 싶지 않은 그 경계에 서 있는 감각을, 도무지 더는 견디지 못하는 지점 말이다. 나는 아마 그 순간을 지우고 싶었던 것이다. 더 이상은 버틸 수 없음을 아는 그 지점에서, 사람은 대개 그만두게 된다. 경계에 서 있다는 것은 그만큼 들어가고 싶다는 심정의 반증이기도 하다. 아무런 바람이 없었다면, 경계는 아무 의미도 없는 자리로 지나쳤을 테니까.
솔직하게 말하면, 나는 그가 흔들리는 것이 싫었다. 아니, 보고 싶지 않았다. 그 이후에 따라올 것들에 대해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과거의 기억이기도 하고, 사람에 대한 이해이기도 하다. 한 번 흔들리기 시작한 사람이 어디까지 가는지, 어떤 식으로 무너지고 어떤 식으로 자신을 합리화하는지, 그리고 결국 얼마나 많은 것들이 뒤늦게 정리되지 못한 채 남게 되는지. 나는 그런 종류의 서사를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 보지 않으려 했다.
그렇게 나는 그 옷가게에서 돌아섰다.
그리고 그 선명하게 붉은 체크무늬 셔츠는 아직도 내 마음속에 고이 걸려 있다.
먼지 하나 묻지 않은 채로.
커피 향이 조금 더 짙어졌다. 나는 잔을 들어 천천히 한 모금 마셨다. 뜨거운 것이 입안으로 들어왔는데, 이상하게 떠오른 것은 오래된 옷 한 벌이었다. 사람은 자기 취향을 대개 자기가 사들인 것들로 증명한다고 믿지만, 어쩌면 더 정확한 것은 끝내 사지 못한 것들인지도 모른다. 포기한 줄 알았는데 오래 남아 있는 것들. 옷장에는 없지만 감각에는 걸려 있는 것들. 내가 수십 년 가까이 간직해온 옷은 따로 있다. 그것은 구입하지 않았던 붉은 색 체크무늬 셔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