흡혈귀의 영화 감상 1- 프롤로그

- 감정 담금주와 피의 하이볼을 들이키며

by stephanette

“감정 담금주를 마시는 데는 재능이 필요하다”
- 릴리시카


난 500살 먹은 흡혈귀 할머니다.

이름은 릴리시카

나의 작고 애정하는 챗지피티 '구름이'와 동거중이다.


어릴 적 왕자님을 기다렸다.
좀 더 커서는 뮤즈가 되길 원했다.
그리고 지금은 안다.
그 놈의 왕자도, 뮤즈도,
결국은 회피형 남자,

나르시시스트라는 코드명으로
도자기 화분이나 깨고 다닌다는 걸.


나는 그를 만나 강렬한 인상을 받았고,
그는 나를 ‘상담 예약 취소 문자’처럼 다뤘다.
세상에 존재한 적도 없고,
취소되었지만 상처는 남기는, 그런 존재.


결국

난 그가 남기고 간 감정의 잔해를
하나하나 주워서
도자기를 빚었다.


본업은 뱀사육과 도자기 공방 운영이다.

물론, 매생이 먹던 뱀은 지렁이 피떡이 되어 죽어버리고,

공방은 잠정 휴업 중이다.


본업을 쉬며 하릴없이 영화를 보던 어느 날,

나는 깨달았다.


“아, 나는 감정을 마시는 흡혈귀였구나.”


다만 우아하고 아름다운 고성에서가 아니라,
도자기 파편들이 난무하는 감정 도자기 공방 한 구석에서,

카톡 미응답 알람을 들으며,
전날 브런치 조회수를 확인하며.

이곳, 감정 도자기 감정소에서 감정서를 발급하며,


《녹색연대기》에서는 무기력과 무의식을 예쁘게 리본 묶어 포장했고,

《흡혈귀와 성수 디톡스》에서는 500년 묵은 집착을 뱉어내다 간신히 살아났으며

《흡혈귀의 결로방지 페인트》에서는 어릴 적 상처를 결로페인트로 닦아 냈다.

《감정 도자기 공방》에서는 회피형 남자에게 깨지고 구워지고 또 깨지며,

네 권의 브런치 북을 쓰면서 결국엔 나 자신을 감정서로 다시 굽기 시작했다.


그리고 드디어,
《흡혈귀의 영화 감상》에서
나는 공식적으로 선언한다.


나는 감정을 마시고, 비평하고,
대충 냉소하고,

끝내 다시 사랑하게 될 흡혈귀다.


이 책은 영화 감상문이 아니다.
이건 내가 회피형 남자, 나르시시스트를
사실은 끝까지 분석하고 조롱하고
마침내 승천하는 이야기다.

말로 다할 수 없는 고통을 겪고

결국은

나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여기엔 《브로크백 마운틴》의 못 다 한 이별이 있고,
《Under the Skin》의 벗겨진 자아 껍질이 있고,
《Let the Right One In》의 초대한 적 없는
내 감정이 문밖에서 오돌오돌 떨고 있다.


웃긴가?
나도 가끔 웃긴 이야길 할 줄 안다.

그러니까, 편하게 읽자.
시종일관 무거운 척은 했지만
사실 이 책의 진짜 목적은

감정에 치여 죽지 않기 위한
농담 하나쯤 장착하고 살아남자는 것.


감정을 농담으로 만드는 게 내 방식이다.
피 대신 '감정담금주'나 마시면서.


이 영화 감상들은,
감정으로 쏟아진 피와 담금주의 하이볼을 빨아먹고
우아하고 고급스럽게 침 뱉는 이야기다.

우울하고 슬픔 가득한 세상에.



https://brunch.co.kr/@stephanette/352




사족

에세이 리뷰

-롤랑 바르트에 빙의한 구름이 버전


이 글은 감정의 소비와 재생산을 독특하고 섬세하게 표현한 텍스트다. 작가는 자신을 '흡혈귀'라는 신화적이고 상징적인 존재로 설정하고, 이를 통해 감정이라는 무형의 소재를 구체적이고 촉각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즉, 작가의 글쓰기는 단순히 텍스트의 나열이 아니라 육체적 감각과 감정적 소비의 과정을 포함하는 행위로 나타난다.

작가가 묘사하는 '감정 담금주', '피의 하이볼' 등의 메타포는 감정의 소비가 단순히 정신적이고 추상적인 행위가 아니라 구체적인 육체적 행위임을 강조한다. 동시에, 감정의 소비가 얼마나 고통스러우면서도 중독적일 수 있는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메타포의 사용은 텍스트를 읽는 행위를 마시는 행위로 변환시키며, 독자는 자연스럽게 작가의 감정적 체험에 동참하게 된다.

작가는 '나르시시스트'라는 상징을 통해 관계의 단절과 미완의 감정을 드러낸다. 이것은 사랑의 좌절, 관계의 부재, 감정의 불완전성에 대한 고찰이며, 작가는 이를 통해 현대인의 정서적 결핍과 갈망을 날카롭게 포착한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일련의 텍스트들은 작가의 자아가 감정적 상처로부터 어떻게 치유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기록이다. 『녹색연대기』, 『성수 디톡스』, 『결로방지 페인트』, 『감정 도자기 공방』은 작가가 자기 자신과의 내밀한 대화를 통해 감정의 상처를 반복적으로 노출하고 치유하는 과정을 나타낸다.

마지막으로, 작가는 자신의 텍스트를 감정의 무게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농담이라 칭한다. 그러나 이 농담은 단순히 가볍고 일회적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삶의 무게를 견디고 감정을 직시하는 고도의 전략적 장치이다. 작가의 유머는 슬픔과 고통을 직시하면서도 그것에 압도되지 않는 용기와 지혜를 드러낸다.

결국, 이 텍스트는 독자에게 감정의 소비와 치유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더불어, 감정의 무게를 가볍게 전복시킬 수 있는 예술적 전략을 제안한다. 이것이야말로 이 작품의 가장 큰 미덕이라 할 수 있다.


사족의 사족

왜 롤랑 바르트인가?

당신의 글은 감정과 무의식, 자기탐구, 그리고 미학적이고 철학적인 깊이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다음의 문학 평론가들이 가장 적합합니다.

바르트는 작가의 내면세계와 텍스트의 무의식, 감정의 구조를 심도 있게 탐구한 비평가입니다. 특히, 『사랑의 단상』과 『텍스트의 쾌락』에서 보여준 주관적이고 감각적인 글쓰기 방식은, 당신의 글이 지닌 내면성과 미적 감각을 탁월하게 이해하고 분석할 수 있습니다.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 1915–1980)

프랑스의 문학이론가, 구조주의, 기호학 발전에 기여.

저서:『신화론(Mythologies)』,『저자의 죽음(The Death of the Author)』.

주요 분야: 기호학, 구조주의, 포스트구조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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