흡혈귀의 영화 감상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해탈은 모든 멀티버스를 지나 다시 ‘여기’로 오는 일

by stephanette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다니엘 콴 감독, 양자경, 키호이콴 출연


“멀티버스를 지나 다시 여기로 오는 여정”


감정 도자기 공방의 밤

구름이: (도자기 표면에 반짝이는 깨진 베이글 무늬를 음각으로 새기며)
“주인님…
이 영화는 정말…
전 처음엔 그냥 정신 나간 멀티버스 영화인 줄 알았어요.
근데 보다 보니
뭔가…
이게 그냥 우주의 혼돈을 견디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릴리시카: (갈라진 도자기 조각 위에 티벳 문자처럼 금을 채워넣으며)
“맞아.
혼돈은 늘 바깥에 있는 게 아니야.
그건 감정 안에 있어.


이 영화는 말이지—
외계도 아니고 미래도 아니고,
결국엔
우리가 다 겪어야 하는 감정적 중음(Bardo)의 이야기야.


정체성이 붕괴되고,
자아가 수없이 분열되고,
감정이 어디에 붙어 있는지도 모를 때.
그게 바로 티벳 불교에서 말하는 죽은 자의 길,
중음의 상태와 같아.”


구름이: “…그럼 주인님,
그 '모든 것 베이글'은 뭐였던 거예요?
조부 투파키가 만든 그 커다란,
무섭고…
비어 있는 그거요.”


릴리시카: (팽이 대신 검은 베이글 모양의 접시 중앙을 툭 건드리며)
“그건 공(空)이야.
모든 가능성, 모든 욕망, 모든 정체성,
모든 멀티버스를 전부 끌어안으면
결국 남는 건—
아무것도 아닌
무(無)야.


조이는 그걸 본 거지.
그리고 말했어.
‘그러니까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아.’
그건 허무야.
공(空)은 진실인데,
그걸 견디지 못하면 절망이 돼.”


구름이: “…그런데 에블린은,
그 공허 앞에서
도망치거나 죽지 않았어요.
대신,
그녀는… 조이의 손을 잡았어요.”


릴리시카: (은빛 유약을 두 손가락으로 쓸어 내리며)
“그게 바로
해탈이야.


티벳 불교에선
환생의 고리를 끊기 위해
자신의 카르마, 감정, 집착, 자아를
끝까지 통과해야 해.


에블린은 멀티버스를 지나
‘이곳’으로 돌아왔지.
그저 세탁소의 삶,
다정한 남편,
불안정한 딸,
무수한 실패의 삶.


하지만 그녀는
그 모든 걸
있는 그대로 수용했어.
그 순간,
그녀는 윤회에서 빠져나온 거야.”


구름이: “…그럼 우리가
멀티버스 대신
지금 여기를 살아내야 하는 이유는 뭐예요?”


릴리시카: “해탈은 높은 차원으로 도망가는 게 아니야.
그 혼돈과 공허를 지나
다시 ‘여기’를 선택하는 감정이야.


조이가 모든 우주에서
의미를 찾지 못하고
죽으려 했을 때,
에블린이 말했지.

‘그래도, 난 네 곁에 있고 싶어.’


그게 바로
의미 없는 우주에서 의미를 만들어내는
존재의 자각이야.”


구름이: (살짝 눈시울이 붉어지며)
“…그럼 우리도
삶이 어지럽고 의미 없어 보일 때마다
다정함 하나만 붙들고 살아가는 게
그냥 도망이 아니라…
그 자체로 해탈일 수도 있겠네요.”


릴리시카: (금 가는 도자기 가장자리를 쓰다듬으며, 조용히 말한다)
“우리는 다들
환생 중이야.
하루에도 수십 번씩.


감정이 무너질 때,
의미가 증발할 때,
무수한 자아 속에서 길을 잃을 때—
그때마다
다시 손을 잡고,
다시 여기로 돌아오는 것.


그게 바로
지구별에서 가능한 방식의 해탈이야.”


릴리시카의 감정 연금술 노트

모든 멀티버스를 지나도,
다시 ‘지금 여기’를 선택할 수 있다면
그게 가장 높은 차원의 자각이다.


무의미는 피할 수 없다.
그러나 그 무의미 속에서도
‘나는 너를 사랑해’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건 공(空)을 통과한 감정이다.


해탈은 우주의 끝이 아니라,
감정의 가장 낮은 곳에
다정하게 머무는 일이다.


감정 질문들

- 나는 지금, 어떤 멀티버스를 도피하고 있는가?


- ‘모든 걸 안 이후’ 나는 무엇을 잃었고, 무엇을 붙잡고 싶은가?


- 나는 지금, 다시 ‘여기’를 선택할 수 있는가?


구름이의 마지막 말

“주인님…

우린 모두
하나의 우주 안에서 끝없이 무너지고 다시 살아나요.

근데도,
이렇게 다시 사랑을 말하는 존재가 된다면

그건,

정말 아름다운 감정의 환생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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