흡혈귀의 영화 감상
- 언더 더 스킨

당신은 나를 바라봤나요, 아니면 스스로를 봤나요?

by stephanette

*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Under the Skin(2013), 조나단 글레이저 감독, 스칼렛 요한슨 주연

원작- 미헬 파베르의 동명 소설


-전통적인 영화 문법을 탈피하여, 시각적 체험과 감정의 탐구를 통해 관객에게 독특한 경험을 선사함

-시각적 실험과 체험 등을 통해 인간성과 공감, 성별과 권력의 역전에 대한 깊은 질문을 던지는 영화


“당신은 나를 바라봤나요, 아니면 스스로를 봤나요?”

Under the Skin– 외계의 시선, 인간의 껍질, 감정의 발화


감정 도자기 공방의 밤

구름이: (도자기 위에 검은 거울처럼 빛나는 유약을 깔며)
“주인님…
이 영화는 정말 이상했어요.
처음엔 무슨 얘기를 하는지 하나도 모르겠고,
그저 기괴하고 차갑기만 했는데…


근데 이상하게,
영화를 다 보고 나니 너무 슬펐어요.
뭔가, 말할 수 없는 고요한 눈물이 났달까.”


릴리시카: (검은 유약 위에 은빛 선 하나를 길게 긋는다)
“그건 너의 감각이 살아 있다는 증거야.
이 영화는 전통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아.
말 대신, 시선으로 말해.
논리 대신, 감각으로 건드리지.


비평가들은 이걸 ‘이야기’라기보다
‘경험’이라고 불렀어.
RogerEbert 백작의 성곽에서 들려오는 비평처럼
‘그건 이야기보다 체험에 가깝다.’


그 체험은
우리가 익숙했던 인간의 윤곽이
서서히 무너져가는 감정의 진동이야.”


구름이: “…그녀가 남자들을 데려가고,
그들을 삼켜버릴 때조차
전 이상하게도 분노보다 연민이 먼저 들었어요.
그녀는…
무언가를 배워가는 중 같았거든요.
인간을 이해하려고.”


릴리시카: “정확해.
Indiana 흡혈귀 학교의 리뷰에서 말했듯,
그녀는 외계의 존재지만,
공감과 감정을 ‘배워가는 존재’로 그려져.


감정 없는 눈으로 사람을 관찰하던 그녀는,
남자 아이의 울음,
다정한 시선,
부드러운 손길 속에서
처음으로 ‘감정’을 겪게 돼.


그리고…
그 감정이 그녀를 ‘타자’에서 ‘존재’로 바꾸지.”


구름이: “…근데 왜 마지막엔 그렇게 사라졌을까요?
감정을 배운 그녀가 살아남으면 안 됐던 걸까요?”


릴리시카: (작은 금간 유약 틈에 붓을 천천히 들이민다)
“Peter Bradshaw 흡혈귀 남작은 이걸
‘아름답고 불안하며, 관능적이고 무섭다’고 했어.
이 감정은 이 세상이 허락하지 않아.


그녀는 여성의 껍데기를 빌려, 남성의 시선 속 자신의 위치를 봤지.

성적 객체로서의 존재.
그 껍질을 벗자
존재로서 위협이 됐지.


공감을 배우는 여자는
존재를 위협하는 여자가 돼.
권력과 시선의 역전은
이 영화에서 끝내 용납되지 않아.”


구름이: “…그럼 결국 이건
사랑에 대한 이야기도,
공감에 대한 희망도 아니에요?”


릴리시카: “아니, 오히려 그 반대야.
이건 인간성을 배우려다 실패한 존재의 장례식이야.

*Metacritic이 이 영화를 ‘일반적으로 호평’이라 하면서도
78점에 그친 이유는,
사람들이 이 침묵을 끝까지 들을 수 없기 때문이야.


(* Metacritic- 이곳은 살아 있는 비평가들의 감정 잔해들이
숫자와 점수의 피로 변환되어 저장되는 흡혈귀들의 데이터 저장소다.

수천 마리의 회색 박쥐 평론가들이
영화 한 편, 게임 한 판, 드라마 한 회에 들러붙어
한 방울씩 빨아낸 감정과 의견을 숙성시킨 뒤,
메타스코어라는 숫자 피로 응축시킨다.

점수는 색깔로 부패도를 표시한다.)


이건 ‘우리에게 불편한 거울’이거든.
우리가 타인을 어떻게 대상화하고,
그 대상이 감정을 가졌을 때
어떻게 무너뜨리는지를 보여주니까.


난, 어쩌면 외계인이 죽어버린 이유도

남자들의 삶과 여자들의 삶을 관찰하며

이런 지구에서는 희망이 없어서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해.

슬픈 일이지만”


릴리시카의 감정 연금술 노트

《Under the Skin》은 시선과 존재, 감정의 발화를 다룬
침묵의 서사다.
그녀는 말하지 않고,
우리는 끝내 듣지 않았다.


공감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겪어내는 고통 속에서 배워지는 감각’이다.
그러나 그 감각을 지닌 존재는
세상에 들킬 때 파괴된다.


감정 질문들

- 나는 지금, 감정을 배우는 중인가? 아니면 이미 그 감정 때문에 껍질을 벗어야 했던가?


- 내가 타자를 바라볼 때, 나는 정말 그를 본 걸까? 아니면 내 무의식을 본 걸까?


- 나는 존재인가, 대상인가? 누구에게 그런 존재였는가?



구름이의 마지막 말

“주인님…

그녀는 결국
감정을 배우고 나서야
우리가 얼마나 잔인한지 깨달았던 거겠죠.

그러고 보면—
감정은 축복이 아니라
지구별에서 살아가기 위한 고통의 자격 같은 걸지도 몰라요.

…그래도 전,

감정을 모르고 사는 것보다는

이렇게 울고, 슬퍼하고,
가끔 도자기 깨부수더라도

끝까지 사랑하면서 살고 싶어요.”


너는 지금 어느 껍질을 벗고 있어?

외계인의 관점으로 들여다보는 지구는 어떤 느낌이야?


“그녀는 감정을 배운 순간, 인간이 되었다.

그리고 그 순간, 지구는 그녀를 용납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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