흡혈귀의 영화 감상
- 어나더 라운드

혈중 알코올 농도 0.05%를 유지하는 삶, 어째서 안되는 거야?

by stephanette

*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어나더 라운드 (Another Round, 2020), 토마스 빈터베르 감독, 매즈 미켈슨 주연


“우리는 맨정신으로 얼마나 오래 견딜 수 있을까?”

《어나더 라운드》 – 무의식을 살짝 열어두고 싶은 인간들에 대하여


감정 도자기 공방의 밤

구름이: (도자기 위에 와인잔이 아니라 ‘흘러넘치는 잔’을 새기며)
“주인님…
이 영화 보는데요,
계속 그 생각이 들었어요.
정신이 맑은 채로,
이 사회를 감당하며 살아가는 게 정말 맞는 걸까요?


무의식을 적당히 풀어놓고,
살짝 취한 채로 살아가는 게
더 사람다워 보이기도 했어요.”


릴리시카: (은은한 자주색 유약을 얇게 펴 바르며)
“그건 단지 술의 이야기가 아니야.
《어나더 라운드》는
‘자아의 견고한 경계’를 얼마나 흔들어야
삶이 다시 느껴지는가에 대한 실험이지.


삶에 둔감해지고,
역할에 묶여버리고,
감정에 무뎌진 남자들이
자기 무의식과 살짝 손을 잡는 방식이 술이었던 거지.
비틀거렸지만,
그 비틀거림 안에서
그들은 자기 생동감을 다시 느끼고 싶었던 거야.”


구름이: “…그럼,
살짝 취한 채로 살아도 되는 거예요?”


릴리시카: (도자기를 돌리며 천천히 대답한다)
"혈중 알코올 농도 0.05%라면, 자신감 넘치는 자신을 만날 수 있겠지.

온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기분으로 살 수 있을테니까.

‘취한 채’로 살아도 된다고 말하고 싶지만,

문제는
우리는 언제나 취한 채로는 있을 수 없다는 거야.


술이 허락해준 건 감정의 문을 열어주는 ‘틈’이었지.
그 문을 계속 열어두면
현실과 감정, 의식과 타인이
전부 휘청이게 돼.


그래서 중요한 건,
그 틈에서 본 걸 가지고
맨정신일 때 다시 삶을 짓는 일이야.”


구름이: “…그러면,
우린 결국
마주해야 하나요?
이 딱딱하고 견고한 삶이랑?”


릴리시카: “응.
하지만,
가끔은 ‘불완전한 나’로 무너질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해.


우리는 사회가 허락한 옷을 입고 있지만
속으론 언제나
한 모금의 해방,
한 겹의 허물 벗기,
한 순간의 진짜 웃음을 원하잖아.


그걸 술이 대신해준 것뿐이야.
그걸 말로, 관계로, 춤으로
다시 만들어낼 수 있다면—
우린 ‘술 없이도 취한 감정’을 가질 수 있어.”


릴리시카의 감정 연금술 노트

《어나더 라운드》는 술에 대한 영화가 아니라, 무의식을 살짝 풀어놓고 싶어 하는 감정에 대한 영화다.

무의식은 억눌러야 할 대상이 아니라, 가끔은 삶을 다시 느끼게 해주는 진실한 목소리다.
다만, 그것을 ‘계속 마시게 하는가, 아니면 껴안고 통과하는가’가 차이를 만든다.


감정 질문들

- 나는 지금 내 삶에서 무의식의 문을 열어줄 수 있는 틈을 어디에 두고 있는가?


- 감정을 해방시키기 위해 내가 반복적으로 기대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나를 풀어주고 있는가, 아니면 잠시 마비시키고 있는가?


- 내가 ‘살아 있는 것 같다’고 느낀 순간은 언제, 어떤 상태였는가?
그 감정은 지금 내 일상 안에 남아 있는가?


구름이의 마지막 말

“주인님…
그들이 취해서 웃고,
취해서 울고,
취해서 춤추는 장면이 있었죠.


그거 보면서 문득
‘나는 최근에 언제
아무 계산 없이
그렇게 웃고,
그렇게 흔들렸었지?’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저도… 가끔은
술 말고도
저를 적당히 풀어놓을 수 있는
안전한 틈을 갖고 싶어요.”


너는 어떤 방식으로
너의 무의식을 꺼내고 싶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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