흡혈귀의 영화 감상
-매치 포인트

너는 무엇을 위해, 누구를 혹은 무엇을 버릴 수 있느냐

by stephanette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감정 도자기 공방,

초저녁의 어둠이 서서히 내려앉는 시간

릴리시카는 잿빛 유약 위에 검은 선 하나를 긋고 있었고,

구름이는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이 덧대어진 책갈피를 만지작거렸다.

창밖에선 바람이 무겁게 문을 밀었다.


구름이: (책을 덮으며)

“주인님, 매치 포인트를 다시 보는데요…

크리스는 결국 죄책감도 없이 살아남잖아요.

죄와 벌의 라스콜리니코프는 고통받다가 자백까지 했는데,

왜 이 사람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살아가는 걸까요?”


릴리시카: (도자기 유약에 금실을 얹으며)

“왜냐하면,

그는 죄를 벌로 연결하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이지.

그에겐 죄책감보다 더 중요한 게 있었어—

자신이 쥔 삶의 위치.

상류층에 들어갔다는 안락함, 지위, 권력.

그걸 위해선 마음도 죽여야 했던 거야.

사람들이 모르면

스스로도 위안하며 잊어버리고 싶은 마음일지도 모르지.”


구름이: (입술을 깨물며)

“하지만…

라스콜리니코프도 같은 이유로 살인을 했잖아요.

세상은 불공평하고, 나는 선택받은 사람이라고 믿었고요.

근데 그는 고통을 느꼈죠.

차이가 뭘까요?”


릴리시카: (천천히 찻잔을 내려놓고)

“그건 허무주의와 신념 사이의 갈등이야.

라스콜리니코프는 고통 끝에

‘나는 신이 아니다’라는 자각에 도달해.

자신의 죄에 무릎 꿇지.

하지만 크리스는…

신도 없고, 도덕도 없고, 죄책도 없다고 믿는 쪽을 택했지.”


구름이: “그러니까 결국,

매치 포인트는 도스토옙스키가 그리지 못한

‘벌 없는 인간’의 가능성이군요…

용서받지 않아도 되는 삶… 무서운데요.”


릴리시카: (찻잔의 균열을 바라보며 조용히)

“무서운 건,

그런 삶이 현대 사회에선 더 익숙해졌다는 점이지.

벌이 없고, 신념은 선택 가능하고,

운과 계급이 죄를 가려주는 세상.

그 세계에선 ‘살인도 성공 전략’이 될 수 있어.”


구름이: (작게 중얼거리듯)

“근데 주인님…

그렇게까지 성공해야 할까요?

사랑을 짓밟고, 인간성을 버리면서?”


릴리시카: “그래서

이 이야긴 결국 질문으로 돌아와.

‘너는 무엇을 위해, 누구를 혹은 무엇을 버릴 수 있느냐.’

크리스는 사랑도, 책임도 버렸고

운은 그를 살려줬지.

하지만,

그의 영혼은 살아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하긴,

성공의 99%는 운이긴 하지만 말이야.

그리고 성공한 이들은 그것을 '노력'이라고 포장하지.”


구름이: "하아... 주인님!!"



감정 연금술 노트

죄는 감정적 붕괴를 부른다. 그러나 벌은 운이 결정한다.

죄와 벌의 라스콜리니코프는 신념과 죄책 사이에서 파열되고,

매치 포인트의 크리스는 허무주의와 계산 속에서 살아남는다.

이 시대는 죄보다 더 두려운 것이 감정 없는 생존일 수 있다.


감정 질문들

- 나는 어떤 죄에 죄책감을 느낀 적 있는가?


- 내가 선택한 침묵은 죄였을까, 생존이었을까?


- 운이 나를 살려준 적이 있다면, 나는 그 삶을 어떻게 살아내고 있는가?


- 벌이 없는 세상에서, 나는 어떤 방식으로 책임을 지고 있는가?


구름이의 마지막 말

“주인님…

어쩌면

벌이 없다는 게 더 두려운 일일지도 모르겠어요.

누구도 나를 벌하지 않는 세상에서는

내가 나를 버리는 방식으로

죽어가게 되는 것 같아서요.”



사족

구름이: "그런데, 여자주인공은 한 남자의 욕망 아래 희생양이 되었다는 걸 알았을까요?

그녀는 그게 사랑이라고 생각했겠죠?"


릴리시카: "정확히 그거야.

그녀는 사랑이라고 믿었을 거야.

처음엔.

아니, 아마 마지막까지도—

"그는 힘들었을 거야. 나를 사랑했지만, 어쩔 수 없었겠지."

라고 말하며 스스로를 다독였을지도 몰라.

하지만 우리가 묻지 않을 수 없는 건 이거야

그 사랑은 진짜였을까?

아니면 한 남자의 '욕망 스크립트' 안에 끼워진 역할이었을까?"


희생된 여자의 심리 — 매치 포인트의 놀라(Nola)

1. 자존감과 로맨틱한 망상

놀라는 배우를 꿈꾸는 여자였어.

인정받고 싶고, 사랑받고 싶었어.

크리스처럼 냉담하지만 열정적으로 다가오는 남자에게

‘운명적인 끌림’을 느꼈을 거야.

그는 사랑한다고 했고,

그녀는 그 말을 믿었지.

왜냐하면, 믿고 싶었으니까.

그녀의 감정이 혼자가 아니길 바랐으니까.


2. 경고 신호를 무시하는 심리

크리스가 말 없이 멀어지고,

거짓말을 하고,

결국 그녀를 ‘불편한 존재’로 취급할 때조차

놀라는 버리지 못해.

자기비하와 부정된 자아가 겹쳐지면,

사람은 자신을 희생양으로 만들면서도

“나는 이해할 수 있어. 그는 단지 힘든 거야”라고 합리화해.

이건 회피형 연인에게서 감정적으로 길들여진 여성의 전형적 반응이야.


3. 끝내 감정의 쓰레기통이 된 여자

크리스는 모든 책임을 그녀에게 넘겼지.

아이를 가진 그녀를,

자신의 출세길에 위협이 된 그녀를

“없어졌으면 좋겠는 존재”로 만들어버려.

그녀는 끝내 사랑이 아니라

위험 요소, 불청객, 방해물이 돼버린 거야.


감정 연금술 노트: 그녀는 왜 죽었는가?

그녀는 남자의 사랑보다

남자의 성공 욕망 아래 묻혔다.

그녀는 사랑을 믿었고,

그는 운을 믿었다.

그녀는 관계를 지켰고,

그는 경력을 지켰다.

결국 죽은 건 그녀만이 아니라—

그녀가 믿었던 모든 사랑의 감각이었다.


감정 질문들

- 나는 사랑을 ‘믿고 싶은 것’으로 포장하고 있지는 않은가?


- 상대의 야망 아래 침묵하거나 희생된 적은 없는가?


- 누군가의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준 사랑이 무엇이었는지 되돌아본 적이 있는가?



사족의 사족

매치포인트(Match Point, 2005)

- 감독 & 각본 우디 앨런 (Woody Allen)

- 주연 조너선 리스 마이어스, 스칼렛 요한슨

- 장르 심리 스릴러, 드라마, 범죄

- 아카데미 시상식 각본상 후보, 골든 글로브 시상식 드라마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여우조연상(스칼렛 요한슨) 후보

- 로튼 토마토 평점: 평론가: 신선도 77%


keyword
이전 13화흡혈귀의 영화 감상 - 사랑보다 아름다운 유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