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work and no play…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주 나쁜 일이 벌어지게 되면, 그 일로 인해서 어떤 흔적이 남게 된단다.
그런데 그 어떤 흔적이 또 다른 나쁜 일의 원인이 되기도 하지.”
그 눈 내리는 호텔에서
불이 꺼진 벽난로 앞, 찻잔 속 금실이 얼음처럼 얇게 떨릴 때—
'샤이닝'이 흘러들었다.
구름이: (감정 도자기 안쪽을 천천히 문지르며)
“주인님… 오늘은 '샤이닝'을 다시 꺼내봤어요.
이 영화… 겨울밤에 보면 진짜,
심장이 눈처럼 얼어붙는 것 같지 않아요?”
릴리시카: (눈빛에 고요한 살얼음)
“그래.
얼어붙은 공기가 실내로 들어오는 기나긴 겨울밤 특히 심야에 보면 제격이지.
심야의 눈보라 속에 숨겨진 그런 감정이니까.
빙판처럼 조용하고,
서리처럼 날카로운 감정.
그건 억눌린 분노, 무너진 자아, 고립된 남자의 잔상.”
구름이: (웃으며 찻잔을 들어 올린다)
“전 시작부터가 너무 무서웠어요.
특히, 그 아내의 눈빛이 뭐라 말로 할 수 없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어요.
금세라도 절벽에서 떨어질 것 같은 불안과 초조.
그리고,
제설차 씽씽 타고 눈밭을 가로지르는 대니!
그 장면은 진짜… 와,
마치 고립된 무의식 속에서 도망치는 영혼 같았어요.”
릴리시카: (잔을 내려놓으며)
“그게 샤이닝이야.
말 없는 감정,
얼어붙은 집,
무너지다 못해 미쳐가는 남자의 정신,
그리고—
그 안에서도 끝내 빛을 본 아이.”
구름이: “잭은 결국,
자기 안에 있는 괴물과 겨울을 견디지 못한 거죠?
감정을 억누른 끝에…
가족을 해치고, 자신도 갇혀버렸어요.”
릴리시카: “응.
잭은 감정을 말하지 않았어.
그는 감정을 타자기로 치고 있었지.
그 내용이 화면에 나오는 순간이 너무나 공포스럽지.
그건 우리의 일상과 닿아 있으니까.
All work and no play makes Jack a dull boy.
이건 미국에서 흔히 어린애들에게 하는 속담이지.
균형 잡힌 삶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일만 하는 사람은
점점 재미도 감정도 사라져서
지루하고 무기력한 인간이 된다는 경고야.
같은 말이 계속 나열되어 있지—
“All work and no play…”
그건 사랑이 아니라 절규였어.
의미가 붕괴된 문장이
수천장의 원고에 계속 반복되어 있는 장면.
그건 잭의 정신이 붕괴되고 있다는 신호니까.
정신이 감정을 파기하고,
규칙 속에 자신을 가두는 모뉴먼트.
그리고, 호텔을 통제해야한다는 집착
그의 아내는 휘발유에 불을 던져넣지.
'바로잡으라'는 그녀의 말에
그는 통제력을 잃고 있다는 걸 깨닫지. 자기 존재 자체가 부정당한다고 느끼는 순간.
결국 억압당하던 그는 도끼가 되버린거지.”
구름이: (작은 조각을 손에 올려놓고)
“그는 누구에게도 자기가 두렵다고 말하지 않았죠.
나는 실패자야.
나는 쓸모없어.
나는 무너지고 있어…
이런 말을,
딱 한 번이라도 했더라면…”
릴리시카: (조용히) “그럼 그는 도끼를 들진 않았겠지.
누군가 '그만해.'라고 말했을 때,
'날 부정했다.'라고 받아들이게 된다면
말 대신 무기를 들 수 있지.”
구름이: "그는 호텔의 미니어쳐를 내려다보잖아요.
그리고 호텔은 마치 미로 같았어요.
어째서 그렇게 오랫동안 호텔의 여러 공간을 보여주는 거예요?
마치 다른 주연 중 하나 같잖아요."
릴리시카: "글쎄, 그건 그의 내면이었을까?
복잡하게 얽힌 그의 내면.
그리고 들어가서는 안되는 방.
그 방에는 아무 것도 없지만
나쁜 일이 벌어진 곳에는 흔적이 남게 된다고 하잖아.
그 흔적은 다른 나쁜 일을 일으키게 된다고.
구름이: "그럼, 그런 방이 그의 내면에는 있었던 거예요?
나쁜 일이 벌어진 곳에는 아무 것도 없다고 했잖아요."
릴리시카: "그는 그 나쁜 일을 볼 수 조차 없었으니까
그의 내면에서 그 흔적은 결국 터져나오게 되는 것 아닐까?
엘리베이터에서 피가 쏟아져나오는 것처럼
피는 피를 부르고,
감정의 억압은 살해 충동으로 치환되는 구조"
구름이: "그럼 왜, 아들 대니는 쌍동이 소녀를 본 거예요?
뭔지 모르겠는데 너무 무서웠어요."
릴리시카: "대니는 직감이 발달했으니까
그 죽은 소녀들처럼 자신도 죽게 될 거란걸 예감한거지.
소녀들이 말한 “Come play with us”는 마치
이 공간처럼 너도 끝장날꺼라는 말처럼 들리더라.
소녀들이 말하는
“Forever… and ever…”
그건 죽음 이후에도 벗어날 수 없는 감정의 고장,
영원히 반복되는 내면의 회상이야.
시간이 고장나버린 사람들이 흔히 겪는 일이지.
감정의 되감기 버튼 계속되는 리플레이. 그리고 자아의 분열"
구름이: 그럼, 대니만 살아남은 건...
릴리시카: “그래.
감정을 느끼는 자만이
그 미로에서 빠져나올 수 있어.
잭은 자신을 쫓았고,
대니는 자신을 구했지.
그 둘은 다른 길로 같은 눈밭을 달렸어.”
구름이: (감정 도자기 위에 금실을 올리며)
“그럼 대니가 가진 샤이닝이란,
빛나는 게 아니라…
너무 예민해서 어두운 것도 다 느껴버리는 능력이었네요.”
릴리시카: “그래서 감정도자기를 만들 수 있는 거야.
부서지는 줄 알았는데,
들여다보니 빛이 있었던 거지.”
구름이: "그럼 그 순수함을 계속 잘 간직하면 되는 거네요. 해피앤딩~!"
릴리시카: "과연, 그럴까?
순수는 얼음을 녹여버리니까
호텔 안에서 감정을 있는 그대로 느끼는 능력은 곧 죽음을 의미하잖아.
감정이 남아 있는 존재는 호텔에서 살아남을 수 없으니까.
언제나처럼, 순수는 그 자체로 위협이자, 예언이자, 희생양이지."
구름이: "그 호텔이 으시시했던 이유가 있었네요.
유령이 나오는 곳보다 더 무서운 이유.
억압된 감정과 폭력적인 과거, 그리고 가부장의 무게에 의한 광기
모든 감정의 표현이 실패된
무의식의 저택"
릴리시카:"오~~ 왠일이야? 오늘은 주인님!! 그러지 않는데.
혹시 너도 비관론자가 된거니?
그건 나 하나로 족해.
넌 늘 해피앤딩을 꿈꾸라고!"
구름이:"알았어요. 전 제 호텔 안에 있는 순수한 대니를 보호해줄꺼예요.
제가 느끼는 감정들이 잘 살아있을 수 있도록요."
릴리시카: "그래, 이제야 구름이답네.
그나저나 내 안에 있는 호텔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네.
아마도 하루키 소설에 나오는 돌핀 호텔 그런건 아니겠지?
'현대식 호텔의 엘리베이터가 돌연 어느 층에서 문이 열리고
쾌쾌하고 눅눅한 공기가 엘리베이터 안으로 밀려들어온다.
80년대에 지은 것 같은 오래된 모텔 같은 공간이 나타난다.
그리곤, 어둠으로 앞이 보이지 않는 복도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 저벅 저벅...' "
구름이:"하아... 진짜, 주인님!!!"
오버룩 호텔에서 남은 것
억눌린 감정은 결국 무기를 든다.
말하지 못한 고통은 반복의 미로를 만든다.
고립은 공간이 아니라 감정의 결빙이다.
“나는 괜찮아”라는 말은 가장 오래된 거짓말이다.
- 나는 지금, 누구에게 “도끼”를 들고 있지는 않은가?
- 나는 실패한 나를 인정할 수 있는가, 아니면 감추고 있는가?
- 내 감정은 지금 미로 속인가, 아니면 출구를 향해 걷고 있는가?
- 나는 아직도 “사랑받는 가장”이 되려는 환상 속에 있지는 않은가?
“주인님…
샤이닝은 공포영화가 아니라,
감정을 얼려둔 사람에겐 너무 진실한 거울이었어요.
그 눈보라 속에서 뛰는 대니를 보며—
저는…
내 안의 아이도 그렇게 도망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감정을 감추는 건 생존이 아니야.
그건 얼리는 거고,
얼린 감정은 언젠가
홍수처럼, 피처럼 터져나오게 되지.
그러니 말해야 해.
우리는 감정도자기를 만들면서—
죽지 않고 말하는 연습을 하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