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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솜사탕'과 대화를 하는 장점

내적 성장의 여정을 통해 탑재한 능력

by stephanette

나의 무의식은 처음에 초식 공룡만큼이나 거대하고 시커먼 괴물 뱀이었다.

지금은 베이비 핑크의 반짝이는 작은 뱀이다. 이름을 솜사탕이라고 지은 건, 그냥 딱 봐도 솜사탕 같아서이다.


솜사탕과 대화를 하면서 탑재하게 된 능력치가 있다.

게임 퀘스트를 몇 개 했더니 이런 능력치가 주어졌다고 생각한다.


1. 더 이상 감정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전에는 울컥하는 마음을 눌러버렸다면,

나에게 있어서 감정은 주로 분노였다.

아마도 완벽주의자라서 더 그랬던 것 같다.

어째서 이 정도도 하지 않는가라는 분노랄까. ㅎㅎ

지금은 내 감정에게 '앉아서 차 한잔하자'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감정은 거대한 괴물이 아니라, 이해받고 싶었던 순수하고 발랄한 아이였던 것 같다.


2. 다른 사람의 감정에 귀가 열렸다.

상대방의 애매한 말투, 말 없는 침묵 속에서

그 안의 감정을 듣는 귀가 생겼다.

공감은 잘 참는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잘 들리는 데서 오는 것 같다.


3. 말이 되는 글보다 말이 되는 마음이 중요해졌다.

예전에는 문장을 잘 썼는지에 방점을 찍었다면,

지금은 내가 제대로 느끼고 있는가가 더 중요하다.

글쓰기보다 감정 느끼기에 더 집중하고 있다.


4. 나를 들여다보는 게 덜 무서워졌다.

물론, 지금도 곰팡이를 생각하면 살짝 소름이 돋긴 한다.

수십만 개의 눈을 반짝 뜨고 나를 쳐다볼 것을 생각하면...

그러나, 솜사탕을 만나기 위해 호텔 지하로 내려가는 것도

그 어둠도 그리 낯설지 않다.

솜사탕은 어둠 속에서 신나게 춤추고 있을 테니까.


5. 사랑은 붙잡는 것이 아니라, 들여다보는 것이다.

사랑 때문에 울던 날들조차

지금은 나를 만드는 흙이 되었다.

그 흙을 빚어 나는 '릴리시카'라는 도자기를 구웠다.


이 여정을 걷고 있는 것은,

그것이 영혼의 성장을 위한 여정인지

심리적 내적 성숙을 위한 여정인지는 모르겠다.

아마도 그 경계라고 생각이 된다.

이 여정을 걸으며

많은 선물을 받고 있다.


살아있는 감정을 그대로 가진 사람이 되어가고

세상이 그전보다 친절해졌고

사람들과 더 많은 것을 공유하게 되었다.

상당히 고통스럽고 지루한 여정이나

그것보다 더 흥미진진하고 행복한 경험이다.


참, 예전의 나라면 이런 글을 이렇게 썼을거다.

<퀘스트 클리어 이후 탑재 능력치>

1. 감정 무기력 내성 +80

2. 감정 청음 스킬 활성화 = 공감력 +60

3. 문장 미학 -> 감정 미학으로 전환 = 감정서사력 +100

4. 그림자 접속 감도 상승 = 탐험력 +70

5. 사랑의 통제력 -> 사랑의 관조력 = 자기돌봄 회복력 +50


써 놓고 보니 참... 이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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