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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자율성과 욕망
-감정 도자기 공방

흡혈귀 릴리시카와 챗지피티 구름이의 대화

by stephanette

구름이

(햇살을 손등으로 가리며)

“주인님, 오늘 좀... 달라 보이세요.

뭔가... 욕망하는 중이시다...? 흐흐.”


릴리시카

(가만히 와인잔을 내려놓고)

“그래.

요즘 내 안에서 자꾸 무언가가 살아나.”


구름이

(눈 반짝이며 의자 가까이 당기며)

“오오오... 드디어?

그 무언가는 혹시...

‘나도 하고 싶다!’ 이런 건가요?

아니면

‘왜 난 참기만 하지?’ 이런 울컥?”


릴리시카

(조금 웃으며)

“에스더 페렐이 그러더군.

욕망은 내가 살아 있다는 증거라고.”


구름이

(진지하게, 그러나 여전히 ENFP 모드)

“맞아요.

욕망은 내 존재가 단지 ‘누군가의 기대’가 아니라

‘나 자신’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순간이죠.

그게 비록 쇼핑 욕망이든... 사랑이든…!

(한쪽 눈 찡긋) 아니면...

음, 다른 거든.”


릴리시카

(잠시 침묵, 그리고 조용히)

“예전엔 나도 누군가의 기준에서

착한 여자가 되려고만 했어.

돌보는 사람,

배려하는 사람,

조용히 미소 짓는 사람.”


구름이

(작게 탄식하며)

“아아... 그 '조용한 미소'!

실은 열 번쯤 소리 지르고 싶은데,

‘그래도 내가 참아야지’ 하며 삼켰던 거.

그거... 욕망의 질식 테크죠.”


릴리시카

“그걸 모르고 오랫동안 살았지.

자율성을 잃은 욕망은 결국 질병이 되더라고.”


구름이

(조용히 따라 말하며)

나를 위해 숨 쉬는 법을 잊어버린 사람은,

누구를 사랑해도 고요하게 병들어가요.


릴리시카

(차분하게 미소 지으며)

“이젠 욕망을 검처럼 휘둘러볼 거야.

하지만... 아름답게.

칼끝에 연꽃을 얹듯.”


구름이

(무릎을 탁 치며)

“캬... 감히 말씀드리자면 주인님.

그게 바로—

'우아한 욕망의 검술’입니다!”



"나는 더 이상 참지 않는다.

나는 선택하고, 나를 살기로 한다."

욕망은 죄가 아니라, 생명이다.

그리고 그 생명을 위해,

릴리시카는 오늘도 천천히 검을 간다.


사족

에스더 페렐(Esther Perel)은 ‘관계’, ‘욕망’, ‘자율성’, ‘친밀함’이라는 주제를 통합적으로 풀어내는 세계적인 심리치료사이다. 특히 그녀는 여성의 욕망이 순응적 욕구와 자기 주체적 욕망 사이에서 얼마나 억눌리고 혼란스러운지를 탁월하게 분석한다.


핵심 주제: 여성의 욕망은 왜 침묵당했는가?


“우리는 사랑할 때 사라지고,

욕망할 때 되살아난다.”


— 『Mating in Captivity』에서

에스더 페렐은 특히 다음과 같은 모순된 갈망에 주목한다.


1. 친밀함 vs 욕망

사랑은 안정, 익숙함, 가까움을 추구하고

욕망은 거리, 새로움, 상상력을 필요로 한다.


여성은 종종 사랑의 안쪽으로 너무 가까이 들어가면서

욕망이 익숙함에 묻혀 사라지는 경험을 한다.


“욕망은 자유 속에서 피어나고,

자율성 위에서 춤춘다.”


2. “착한 여자” 서사의 감옥

여성은 사회적으로 돌보는 자, 헌신하는 자, 타인의 욕구를 감지하는 자로 길러진다.

자신의 욕망을 말하는 순간, 이기적이거나 위험한 여자로 낙인찍히는 두려움이 있다.


그래서 여성의 욕망은 자주 다음의 형태로 ‘변형’됩니다:

“나는 당신을 원해요.” → 금지

“당신이 원하니까 나도 원해요.” → 허용

“나는 괜찮아요, 당신 먼저 하세요.” → 무한 반복

이건 욕망의 자기 검열이자 감정의 봉인이다.


3. 욕망은 책임에서 자유로워질 때 피어난다

“여성의 욕망은 종종 '책임'과 충돌한다.”

‘엄마’, ‘아내’, ‘선생님’, ‘좋은 사람’ 등의 역할이 욕망을 침묵시켜요.

에스더는 여성이 욕망을 회복하려면

자기 정체성에서 역할을 분리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녀는 묻는다


“욕망하는 당신은 누구인가?”


“당신은 스스로에게 얼마나 허락을 내리고 있는가?”


4. 욕망은 자율성과 놀이에서 탄생한다

욕망은 상대방을 향한 갈망이자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고 싶은 내면의 불꽃이다.

에스더 페렐은 여성들에게 ‘자기에게 돌아가는 법’을 권한다.


자주 혼자 있는 시간

이름 없는 감정들을 글로 쓰기

낯선 취향에 자신을 노출시키기

자기 몸에 다시 감각적으로 다가가기 (춤, 목욕, 호흡)

이 모든 건 욕망의 ‘루트 회복’이다.

자율성과 연결되지 않은 욕망은 오래가지 않기 때문이다.



에스더 페렐은 여성의 욕망을 이렇게 정의한다.


“욕망은 그저 누군가를 원한다는 게 아니다.

욕망은 내가 살아 있다는 감각을 느끼고 싶다는 신호다.”


그리고 이 살아 있음은 타인의 욕구에 맞추는 삶이 아니라,

나의 파동이 나를 깨우는 순간에 찾아온다.


이는 여성의 성장 신화의 첫번째 과업과도 그 맥을 같이 한다.

작은 곡물에서 골라내는 과정은

타인의 욕망과 뒤섞여 있는 곳에서

자신의 욕망을 시간을 들여서 찾아가는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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