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그리고 그것을 말할 수 있는가
"욕망과 자율성의 정립" 중
“Desire is the language of power” (욕망은 권력의 언어다)라는 주제로,
Esther Perel, Nancy Chodorow, Jessica Benjamin의 관점들을 요약
에스더 페렐(Esther Perel)이 이 문장으로 말하고자 한 것은 단순히 성적 욕망이나 감정 표현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욕망할 수 있는 나”가 될 수 있느냐의 문제이며, 욕망하는 주체로서의 자율성을 의미한다.
1. 욕망은 ‘행위’가 아니라 ‘주체성’이다
페렐은 여성의 욕망을 성적 쾌락의 개념으로만 제한하지 않는다.
그녀에게 욕망이란 곧 "선택권", "방향 설정", "의지 표현" 그 자체입니다.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누구와 함께 있고 싶은지,
내 안에서 어떤 감정을 느끼고 싶은지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이 곧 욕망이다.
즉, "나는 이것을 원한다"는 말은
"나는 나의 삶을 선택할 수 있다"는 선언이다.
2. 권력 없는 욕망은 없다
Jessica Benjamin은 이렇게 말한다.
“주체가 되기 위해선,
타인 앞에서 나의 욕망을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좋은 딸’, ‘착한 사람’이 되도록 사회화되며 자기 욕망을 누르고 타인의 요구에 순응하도록 훈련받는다. 그러다 보니 여성의 욕망은 종종 위협, 이기심, 무례함으로 간주된다. 하지만, 진짜 권력은 남을 지배하는 힘이 아니라 자기 욕망을 표현하고 그 선택을 당당히 인정받는 힘이다.
즉, "욕망을 드러내는 것"이 곧 "존재를 주장하는 일"이고, 그 자체가 권력의 언어가 되는 것이다.
3. 왜 여성들은 종종 욕망 대신 돌봄을 선택하는가?
Nancy Chodorow는 모성심리학 연구에서 말한다. 여성들은 주로 “타인의 감정을 먼저 읽고 반응하는 능력”으로 자기를 구성합니다. 그래서 "내가 원하는 것"보다는 "상대가 나에게 원하는 것"에 더 민감하다.
이 구조 속에서 여성은 종종 이렇게 혼잣말한다.
“그 사람이 날 좋아하길 바래.” → 그럼 나는 무엇을 원하는데?
“나에게 어울리는 사람일까?” → 그 전에 나는 누구지?
진짜 자율성은
“내가 너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가”가 아니라
“내가 나에게 좋은 삶을 선택하는가”에서 출발한다.
4. 욕망을 말하는 언어를 회복하라
페렐은 여성들이 “욕망을 말하는 언어”를 회복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이 언어는 다음과 같은 문장들로 시작된다.
“나는 이것이 좋았어.”
“나는 더 원하고 싶어.”
“이건 내 방식이 아니야.”
“지금 이 순간, 내 안에 어떤 감정이 올라오고 있어.”
이는 결국 "욕망을 말할 수 있는 언어 능력"이
곧 심리적 주권(psychological sovereignty)을 되찾는 길이라는 뜻이다.
나는 누구인가?
기존 관점 : 타인의 기준에서 만들어짐
욕망 중심 관점 : 나의 욕망으로 구성됨
어떻게 살아야 하나?
기존 관점 : 좋은 사람, 옳은 사람
욕망 중심 관점 : 원하는 사람, 진실한 사람
권력이란?
기존 관점 : 지배하고 영향력 있는 것
욕망 중심 관점 : 욕망하고 선택할 수 있는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