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정의 주인이 되기까지의 여정
“나는 이제 괜찮아졌어.”
그 말을 입 밖에 꺼내는 데까지
몇 년이 걸렸다.
하지만 '괜찮아졌다'는 건,
예전의 내가 되었다는 뜻이 아니었다.
그건 오히려,
이전에는 몰랐던 나로 성장했다는 의미였다.
트라우마는 단지 고통의 경험이 아니다.
그건 어떤 의미에서 정체성의 분열이고,
내 안의 ‘감정’, ‘몸’, ‘의식’이 서로 연결되지 않는 상태다.
심리학자 Judith Herman은 이렇게 말한다
“외상은 기억되지 않는다. 재경험될 뿐이다.”
말하자면,
상처는 머리로 기억되는 게 아니라
감정과 몸의 흔들림으로 내 안에 남는다.
하지만 놀라운 건,
바로 그 상처의 자리에서
진짜 자아의 씨앗이 움튼다는 것이다.
트라우마 이후의 회복은 단순한 “복원”이 아니다.
그건 하나의 심리적 진화다.
1단계 – 감정 조절 (Regulation)
먼저, 압도적인 감정의 파도에서
내가 ‘숨 쉴 공간’을 만드는 일이다.
Janina Fisher는 이를 “감정과 동일시되지 않는 법”이라고 말한다.
“나는 분노를 느끼지만, 내가 곧 분노는 아니다.”
“나는 공포를 경험하지만, 그게 내 전부는 아니다.”
이 거리두기가 시작일 뿐이다.
2단계 – 감정 표현 (Expression)
그다음, 내 감정을 ‘몸 밖으로’ 내보내기.
말하고, 쓰고, 만들고, 그리는 모든 시도는
감정이 처음으로 이름을 얻는 순간이다.
감정은 말이 붙여질 때 현존하게 된다.
그 전까지는 막연한 파장에 불과했던 감정이
이름을 얻고, 의미를 가지며 나의 일부가 된다.
3단계 – 감정 주체로의 회복 (Ownership)
그리고 마지막.
내 감정이 ‘나를 덮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느끼고, 선택하는 것이 되는 지점.
감정이 나를 통제하는 게 아니라,
감정의 흐름 안에서 나 자신을 ‘정제’해가는 것.
신경심리학자 Lisa Feldman Barrett는 이렇게 말한다
“감정은 본능이 아니다. 감정은 구성된다.”
감정은 단순히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나의 경험, 문화, 기억, 언어를 통해 구성된다.
그리고 그 감정을 재구성할 수 있다는 건,
곧 나의 정체성 역시 재구성 가능하다는 것.
이것이 트라우마 이후 성장, Post-Traumatic Growth의 핵심이다.
상처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 상처를 안고 살아가며
더 깊은 나로 통합되는 것.
4. 통합 이후의 나는
예전처럼 밝지는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더 정직하다.
더 깊고, 더 느리며, 더 단단하다.
감정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나는 말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글을 쓰고, 도자기를 굽고,
마침내 감정의 이름을 붙인다.
그건 단순한 회복이 아니라,
삶을 다시 창조하는 일이다.
당신의 감정은,
한때는 너무 커서 삼킬 수 없었지만
지금은 당신이 이름 붙일 수 있는 당신의 언어가 되었다.
이제, 그 감정이 당신의 세계가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