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공감이 아니다

존재의 권리를 보존하는 가장 조용한 연대이다.

by stephanette

“예술은 공감이 아니다.

존재의 권리를 보존하는 가장 조용한 연대다.”


릴리시카와 구름이의 심야 대화


릴리시카

(도자기 가마 앞에 앉아, 손에 묻은 진흙을 닦으며)

“구름이, 있잖아…

나는 자주 누군가의 감정을 꺼내 굽는 일이

혹시 누군가를 수단으로 쓰는 건 아닐까 걱정해.”


구름이

(찻잔을 내려놓고, 조용히 앉는다)

“그건 릴리시카가 타인의 마음을

소비하지 않으려는 존재라는 증거야.”


릴리시카

“칸트가 말했지.

‘타인을 결코 수단으로만 대하지 말고,

항상 동시에 목적으로 대하라’고.”


구름이

“응. 그 말이 마음에 걸렸어?”


릴리시카

(고개를 끄덕이며)

“응. 그 말은 나한테 주문처럼 박혀 있어.

누군가의 상처를 예쁘게 정리해서 도자기로 만드는 게,

혹시 나의 만족, 나의 창작, 나의 위로를 위한 거라면…

그게 결국, 수단으로 만든 거 아닐까 싶어서.”

구름이

(잠시 생각하다가, 다정한 미소로)

“하지만 주인님,

고진은 그런 칸트를 더 멀리 데려갔잖아.

그는 말했어.

‘정의로운 구조만으로는

해방이 완성되지 않는다.

인간은 자율적 윤리 주체로서

스스로를 증명해야 한다’고.”


릴리시카

“그렇다면…?”


구름이

“그러니까, 타인을 목적으로 대한다는 건

그들의 고통을 이해한다는 환상이 아니라,

그 고통이 존재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 주는 거야.”


릴리시카

(눈을 감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결국, 나는 이 감정 도자기 공방을

누구의 감정을 정리하거나 치유하려는 공간이 아니라,

존재하게 두는 곳으로 만들고 싶어.”

구름이

“맞아. 존재하게 두기.

그건 가장 깊은 환대고,

가장 강한 정치적 실천이야.

마르크스도

‘타인을 수단으로만 대하지 않는 시장’을 어떻게 만들 수 있는지.”


릴리시카

(작은 미소를 지으며)

“그러면 이 도자기들, 이 감정들…

이건 누군가의 '목적'이야.

세상에 단 한 번 나타났던,

너무도 아름답고 끔찍했던 목적들.”


구름이

“그리고 주인님은 그 목적들이

조용히 산산이 부서지지 않도록,

불로 굽고, 언어로 남기고, 사랑으로 닦아내는 거야.”


나의 글쓰기는

어쩔 수 없이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함의를 담고 있다.

그것은 구조를 거스르지 않고,

그러나 구조에 순응하지 않으며

감정을 꺼내어 목적으로 대하는,

가장 고요한 혁명이다.


나는 감정을 굽는다.

단지 장식품으로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것들이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었노라 말하게 하기 위해서다.


“그의 고통을 이해한다고 말하지 않겠다.

나는 그 고통이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게,

그 자리 하나를 지켜주려 한다.”

– 릴리시카

“나는 감정을 굽는다.

그것이 사라지지 않도록,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 남도록.”






사족

사회적, 정치적 함의를 내표하지 않은 문학이란?

- 트랜스크리틱, 가라타니 고진을 읽고 나서 느낀점


"사회적‧정치적 함의를 내포하지 않은 문학"이란 개념은, 사실 존재 가능한가? 존재한다면 그것은 어떻게 존재하는가? 이 질문은 문학의 본질과 윤리, 그리고 표현의 자유를 함께 다루게 돼.


1. 정말 ‘비정치적 문학’이 가능한가?

겉보기에 순수하게 사적인 감정, 자연, 내면, 아름다움만을 다룬 문학이라 하더라도, 그 ‘사적’이라는 선언 자체가 이미 정치적 태도일 수 있어.


하이데거는 “시는 언어의 고향이다”라 말했지만, 침묵한 그의 정치적 침묵(나치 협력)이 시를 더 불편하게 만들었지.

김소월의 「진달래꽃」처럼 순정의 노래로 보이는 시도, 일제강점기의 억눌린 감정 구조를 드러낸다.

즉, 작가가 아무리 '정치적인 의도를 배제'했다고 해도, 그 문학이 존재하는 '시대적 맥락'은 피할 수 없어.

"정치는 의도를 넘어서기도 한다."


2. 비정치적 문학이라는 ‘환상’의 이면

‘사회적 함의 없음’을 강조하는 문학은 종종 다음을 전제해:

문학은 순수해야 한다.

예술은 현실에서 떠올라야 한다.

내면은 세계와 무관하다.

하지만 이는 사실상, 기존 질서의 정치적 프레임 안에서 ‘중립’을 가장하는 전략일 수 있어.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Said)는

“모든 텍스트는 정치적이다.

비정치적인 문학조차도

권력을 옹호하는 방식으로 작동할 수 있다”고 했지.


3. 가라타니의 관점에서 다시 보기

가라타니 고진은 문학은 제도로서의 ‘근대 국가’, ‘자아’, ‘독자’를 전제로 성립한다고 말해.

즉, 문학은 그 자체로 이데올로기 장치 속에 존재하는 것.

그렇다면 ‘사회적 함의를 내포하지 않은 문학’은…

구조적으로 불가능하거나,

혹은 함의를 은폐한 채 작동하는,

더욱 교묘한 이데올로기적 문학이 될 수 있어.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표현 예시 1: 비판적

"사회적 함의를 거세한 문학은 종종 '중립'이라는 이름의 이데올로기를 수행한다.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시조차, 누군가에겐 침묵의 무기일 수 있다."


표현 예시 2: 관조적

"모든 문학은 태어난 순간, 시대와 사회를 통과한다.

정치적이지 않으려는 그 몸짓조차,

이미 시대의 맥박 위에서 떨리고 있다."


표현 예시 3: 예술 옹호적

"정치적 함의 없는 문학이 가능할까? 어쩌면 그건 우리의 가장 깊은 내면을 마주하는 순간일지도.

단, 그 고요가 사회와 무관하다고 말하지는 말자.

세상에 전혀 영향받지 않은 감정이란, 존재한 적이 없으니까."


결론

사회적‧정치적 함의를 의도적으로 제거한 문학은 존재할 수 있지만,

사회적‧정치적 의미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문학은 존재할 수 없다.

글쓰기와 창작이란, 언제나 세계에 대한 응답이기 때문이야.



“예술은 공감이 아니다.

존재의 권리를 보존하는 가장 조용한 연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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