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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은 기어를 거꾸로 넣고 달린다 사랑과 삶 되감기 3

초콜릿색 쉐보레 올란도와 잿빛 소나타 - 멈춰버린 심장

by stephanette

기억은 기어를 거꾸로 넣고 달린다

- 후진의 감각으로 바라본 사랑과 삶 3편


10년 전의 일이다.

높은 차를 좋아한다.

짐칸이 있는 차를 좋아한다.

한국에는 그런 차를 좋아하는 이가 별로 없다.


몇 번째 차인지는 기억이 안 난다.

다만, 원하지 않은 이유들로 차를 여러 번 바꿨다.


올란도를 새로 산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의 이야기이다.

초콜릿색 올란도가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명절에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주변에 차가 없다.

그래서 속도가 나는지 잘 가늠이 안된다.

과속까지는 아니었던 것 같다.


이상하게 차가 점점 느려졌다.

주변에는 차가 한 대도 없다.

그런 시간 대였나 보다.


차의 속도는 20킬로미터 밖에 되지 않았다.

기어코 어디든지 댈 곳을 찾아서

겨우겨우 졸음 쉼터에 세웠다.

앞에는 낡고 연식이 오래된

잿빛 소나타가 세워져 있었다.

자고 있나 보다.


레커를 불렀다.

보험회사에 연락을 했다.

고속도로 중간이라

거기다 명절이라

어떻게 해도

오래 걸릴 분위기였다.


시간은 참 더디다.

주변엔 지나가는 차도 거의 없고

사람도 없다.

할 수 없이 멍하니 앞을 바라볼 밖에.


갑자기 주변이 소란스럽다.

자가용이 와서 앞차의 옆에 선다.

차 문을 연다.

경찰차가 온다.

또 경찰차가 온다.

또 경찰차가 온다.

사람들이 우르르 내려서 차의 문들을 다 열어젖힌다.

전화를 하고 뭔가 분주하다.


할 수 없이 앞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

구급차가 온다.

검은 비닐천 같은 것으로 덮인 사람은

구급차에 실린다.

소지품들과

여러 물건들이 밖으로 나온다.

안 좋은 선택을 한 것 같다.


명절인데

할 수 없이

앞을 바라보던 난,

할 수 있는 게

기도 밖에 없었다.


그렇게 한 시간인가를

레커는 오지 않고

명절의 고속도로에서

낡은 잿빛 소나타와

그렇게 만났다.


그날 이후, 쉐보레 올란도는
엔진 이상으로 떠나보냈다.

엔진은 심장인데,
그날, 두 개의 심장이 멈춘 것 같았다.



사족

쉐보레 올란도

쉐보레가 2011년부터 생산했던 전륜구동 7인승 RV, MPV.

레조의 빈자리를 채운 모델이지만 크기 차이로 인하여 실질적인 후속 차종은 아니다. 한국 GM에서 은근히 잘 팔렸던 효자 차종. 후술 하겠지만 대한민국 시장 내에서 현대·기아의 같은 포지션의 모델인 카렌스의 판매량을 뛰어넘기도 했던, 국산 자동차 메이커로서 일부분이나마 일인자로 군림했던 몇 안 되는 차종이다.

2023년 중국 시장에서 생산 중단되며 2세대를 끝으로 단종되었다. -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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