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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은 기어를 거꾸로 넣고 달린다 사랑과 삶 되감기 4

녹색 아반떼 투어링 - 녹색 차, 녹색 꿈, 녹색 바다

by stephanette

기억은 기어를 거꾸로 넣고 달린다

- 후진의 감각으로 바라본 사랑과 삶 4편


요양 시절에 타던 차는

녹색 아반떼 투어링이다.

역시나

짐칸이 있는 차가 좋다.

중고차 중에

아반떼 투어링은 녹색 밖에 없다.

그래서 이름을 미도리 みどり(緑)라고 지었다.


그 시절의 나는

평소의 INFP와는 전혀 다르게

모르는 이들을 마구 만나고 다니고,

모르는 이들에게 즉흥적으로 연락을 해서 번개를 하거나

모르는 이들에게 즉흥적으로 연락을 해서 여행을 가자고 했었다.

물론, 문학이라는 공통분모는 있었으나,

그다지 잘 알지 못한다.

적어도

사계절 아니,

수년 이상은 보아야

그나마 조금 알게 되는 게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괜스레 바람이 불어서

여행을 가고 싶었다.

목적지도 불문

동행자도 모른다.

연락을 했다.

같이 가려는 이들이 답이 온다.


소설을 쓴다는 아는 동생은 자기도 みどり(緑)라고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아니었지만,

그래서 친해졌다.

가끔 모임에 타로 카드를 누가 들고 오면,

전혀 알지도 못하면서 점을 봐줬다.

즉흥적인 이미지로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재주는

그 누구도 따라가지 못했다.

다들 감탄 연발에

타로 카드 리더가 아니라고 하면

아무도 믿지 못하는 눈치였었다.

뜬금없이,

고양이를 키우면 귀신이 못 온다는 식의

싱거운 이야기를 하곤 했다.


고양이처럼 까칠한 여자아이와 그 남자친구가 같이 가겠다고 한다.

알지도 못하는 장소로 향한다.

미도리가 '주산지'에 가서 사진을 찍으면 멋지다고 해서.


꼬불꼬불 국도를 쉼 없이 달렸다.

초록의 연못이 나왔다.

그 속에서 나무들이 자라나

수백 년은 됨직한 형체로 무성하다.

초록색 안개가 피어오른다.

초록의 사진들을 찍었다.


당시의 나는

수동 필름 카메라를 좋아했다.

Nikon FM2나

Canon AE-1의

부품들을 사거나

여러 종류의 필름들을 갈아 끼우며

사진을 찍으면

조용하고 섬세해진다.

요즘의 핸드폰 사진과는 달리

한 번의 셔터를 누르는 것은

매우 중요한 작업이다.

원하는 순간을

원하는 대로

포착하기 위해

여러 가지 들을 고려해서

오래 기다리고

날렵하게

낚아 채여한다.

그래서 좋아했었다.


눈으로 초점을 맞춰야 하는

Rollei 35를 길들이려고

찍지 않아도 늘 들고 다니던 시절의 이야기이다.


녹색을 태우고 녹색을 타고 녹색을 찍었다.


주산지는 근처에 숙소라고 할만한 것이 없다.

구불구불 가파른 국도를

구불구불 되돌아서

숙소를 찾아

구불구불 헤매었다.

겨우 잡은 숙소는

가장 좋은 '호텔'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수십 년도 더 된 폐건물 같았다.

낯선 곳은 가지 않는다.

그런 곳은 더더군다나 가지 않는다.

그 시절 나는 비현실적인 순간을 자주 겪곤 했다.


한옥 느낌으로 꾸며져 있다.

그냥 평범한 콘도의 느낌이다.

커다란 방에 네 명이

편의점에서 사 온 음식들을 꺼내 놓았다.


날카로운 금속의 여자 비명이 들린다.

매우 높고 짧다.

거울 속이다.

옆에 앉은 미도리를 봤다.

순간, 미도리도 나를 본다.


둘 다 같은 말을 외쳤다.

"당장 나가자!"


그리고는 밖으로 나온 우리는 한 동안 그곳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복도에는 아무도 없다.

침묵.

하긴, 이런 시즌에 누가 관광을 올리도 없다.

다른 숙소는 아예 없다.


다시 들어갈 엄두는 안 난다.

아무 말을 안 해도

그도 나도 어떤 것인지 알고 있었으니까.

고양이 같던 어린 그녀도

모르는 눈치는 아니다.

아무도 그 일에 대해서

말하지 않는다.

말하지 않으면

사라져 버리는 건가.

미도리는 술을 마시면, 귀신이 도망간다나

또 그런 실없는 이야기를 했었다.


다음날,

동이 트기도 전에 출발을 했다.

고양이 같던 어린 여자애가

어느 바닷가를 가자고 한다.

그래서 거길 갔다.


여전히

도착해서는

각자 하고 싶은 것을 한다.


해변에는 암석들이 즐비하고,

폐건물이

반쯤 허물어져 있다.

나는 커플의 사진을 찍는다.

폐 건물은

노란색의 벗겨진 페인트

그리고 녹색의 느낌이 났다.


원하는 곳을 왔건만,

그 여자아이는 까칠했다.

편의점에서 음식을 사는 것부터가

못마땅한지,

돈이 많이 든다며 투덜거리고

그녀의 남자 친구는 안절부절이다.

어차피 비싸든

아니든 경비는 내가 다 내고 있어서

딱히 그럴 것도 아니었다.


나중에 집에 와서

그녀가 말해줬다.

그 바다는

할머니와의 추억이 있는 곳이라고.

그녀는

어릴 적

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할머니를 보내줬던 바다라고 그랬나.

지금은 사라져버린

온라인 플랫폼에 올렸던,

고양이처럼 까칠한 그녀와 그녀의 남자 친구와

폐건물이 있던 그 바다.

그리고 할머니.


오늘 새벽의 꿈은

녹색 차와 녹색 꿈과 녹색 바다를

그렇게 떠올리게 한다.


사족

Nikon FM2

출시: 1982년

특징: 기계식 셔터, 배터리 없어도 작동, 초당 1/4000초 고속 셔터

평가: 내구성 최고, 스트리트·보도사진 작가들이 사랑한 모델

분위기: 다소 거칠고 도시적인 질감


Canon AE-1

출시: 1976년

특징: 전자식 노출계, 사용 편의성 우수, 수동+반자동 겸용

평가: 입문자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필름 SLR

느낌: 밝고 선명한 톤, 가족 사진이나 일상 기록에 잘 어울림


Rollei 35

디자인: 은색 무광 바디에 블랙 그립이 조화를 이루며, 클래식하면서도 세련된 외관

렌즈: 초기 모델은 Zeiss Tessar 40mm f/3.5 렌즈를 탑재하였으며, 이후 모델에서는 Sonnar 40mm f/2.8 렌즈가 사용

초점 방식: 목측식(Zone Focus)으로, 사용자가 거리 눈금을 보고 수동으로 초점을 맞추는 방식

크기: 컴팩트한 사이즈로, 주머니에 넣고 다닐 수 있을 정도로 작다.

조작 방식: 셔터 속도와 조리개 조절 다이얼이 전면에 위치해 있으며, 필름 감기 레버는 하단에 있다.


아반떼 투어링

1995년 5월 4일에 열린 서울 국제 모터쇼에서 아반떼의 왜건 버전으로 출품했던 "넥스트원"이라는 이름의 컨셉카로 출품했던 것을 동년 9월 18일에 J2형의 가지치기 모델로 스테이션 왜건 타입의 "아반떼 투어링"이라는 모델이 시판됐다. 출시 초기에는 베타 1.8L DOHC 엔진만 장착했으나, 1996년 5월 19일에 알파 1.5L DOHC 엔진을 추가했다. 그러나 1.8L 모델은 1.5L 모델에 비해 많이 팔리지 않아 상당히 보기 어렵다.

- 출처: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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