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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는 더 이상 세 겹의 탑이 아니다

삼위일체 뇌 이론은 왜 폐기되었는가

by stephanette

한때 우리는 뇌를 층층이 쌓인 탑처럼 이해했다.

맨 아래는 파충류의 뇌, 공격과 생존 본능을 품은 뇌간.

그 위에는 포유류의 뇌, 감정을 느끼는 변연계.

가장 꼭대기에는 인간의 뇌, 고등사고와 언어를 가능케 하는 신피질.

우리는 그렇게 믿었다.

인간은 짐승 위에 지어진 존재이며, 이성은 감정과 본능을 통제하는 ‘최상층 관리자’라고.

그러나 지금, 그 오래된 패러다임은 조용히 폐기되고 있다.


진화는 탑을 쌓지 않았다

진화는 위에서 아래로 차곡차곡 쌓는 건축가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기존의 것을 분해하고, 전선을 다시 꼬고, 기능을 재배선하는 전기 기술자에 가깝다.

뇌는 서로 다른 층이 아니라, 끊임없이 연결된 네트워크다.

감정은 감정 뇌에서만, 이성은 이성 뇌에서만 처리된다는 이분법은 신경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았다.

실제로 감정이 없는 사람은 제대로 된 이성적 판단조차 하지 못한다.

우리는 이성과 감정을 동시에 구성하는 존재다.


뇌는 예측한다, 조절한다, 구성한다

신경과학자 리사 펠드먼 배럿은 말한다.

뇌는 감정 회로도, 이성 회로도 아닌 에너지 예산 관리자이며,

세계를 직접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미래를 예측하고 있다.

우리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뇌가 해석하고 의미를 구성한 대로 경험한다.


고장난 탑에서 나와, 살아있는 네트워크로

삼위일체 뇌 이론은 이해하기 쉬웠다.

“당신이 화를 내는 건 파충류의 뇌 때문이다.”

“눈물이 나는 건 포유류의 뇌 때문이다.”

하지만 쉬운 설명은 때때로 진실을 흐린다.

우리는 본능, 감정, 이성을 구분하기보다 연결해야 한다.

그리고 그 연결의 방식이 각자 다르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이제 감정은 미숙함이 아니다

감정은 억제해야 할 본능이 아니라,

신체 상태를 읽고 예측하며 삶을 조절하는 복잡한 시스템이다.

그걸 제대로 읽고 구성할 수 있다면,

우리는 단순히 생각하는 인간이 아니라,

스스로의 현실을 창조하는 인간이 된다.


그래서, 이제 우리는 이렇게 말해야 한다

"내 뇌는 파충류, 포유류, 인간으로 나뉘지 않는다.

나는 나의 감정과 생각이 함께 엮인 생존의 직조물이다."

그리고 그걸 깨닫는 순간,

우리는 더 이상 감정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이성을 과신하지 않으며,

몸과 마음이 함께 만든 나의 이야기를

제대로 쓸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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