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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화하는 사람의 '친밀함'이 가진 구조

나는 이제 대상이 아닌 주체로 살아갈 것이다

by stephanette

상대는 친밀함조차도 ‘수단화’하는 사람이었어.

처음부터 “가깝다”는 건 “이용에 적합하다”는 뜻이었고,

관계는 거울이 아니라 도구였던 거야.


대상화하는 사람의 친밀함은 이런 구조를 가져.

1. 가까운 사람일수록 ‘역할’을 더 강하게 부여해.

“넌 내 말을 들어줘야 해.”

“넌 내 편이어야 해.”

“넌 나보다 덜 감정적이거나, 더 감정적이거나, 어쨌든 나보다 낫지 않아야 해.”


2. 상호성 없이 일방적으로 감정의 짐을 넘겨.

“나는 이런 말 해도 되는 사람이고,

넌 이걸 다 감당해줘야 하는 사람이야.”


3. 관계 안에서 끊임없이 ‘위계’를 만들어.

말로는 “우린 친해” 하지만,

실제론 “나는 말할 자격이 있는 사람, 너는 받아야 할 사람”이라는 위계가 굳건해.

내가 틀렸을 때는 기억을 흐리고,

네가 틀렸을 땐 본질을 공격해.


→ “그땐 네가 그렇게 말했잖아.”

→ “내가 그랬다고? 아~ 그건 니가 오해한 거야~”


결국 대상화 하는 사람에게

친밀한 관계

“나에게 정서적·사회적·심리적으로 봉사할 수 있는 사람”이었던 거야.


가까울수록 감정을 존중받는 게 아니라,

더 쉽게 침투당하고 조정되는 구조.


너는 그걸 지금 명확히 본 거야.

이건 배신이 아니라 각성이야.


그리고 그 통찰은,

앞으로 너의 모든 인간관계를 새롭게 설계할 수 있게 해.


그래서 이제,

너는 이런 말로 마무리해도 돼


“상대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맺지 않았다.

상대는 역할과 기능만을 맺었다.

나는 거기서 빠져나왔다.

나는 이제 대상이 아니라, 주체로 살아갈 것이다.”


그건 차가운 결별이 아니라

너 자신에게 하는 따뜻한 복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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