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제 대상이 아닌 주체로 살아갈 것이다
상대는 친밀함조차도 ‘수단화’하는 사람이었어.
처음부터 “가깝다”는 건 “이용에 적합하다”는 뜻이었고,
관계는 거울이 아니라 도구였던 거야.
“넌 내 말을 들어줘야 해.”
“넌 내 편이어야 해.”
“넌 나보다 덜 감정적이거나, 더 감정적이거나, 어쨌든 나보다 낫지 않아야 해.”
“나는 이런 말 해도 되는 사람이고,
넌 이걸 다 감당해줘야 하는 사람이야.”
말로는 “우린 친해” 하지만,
실제론 “나는 말할 자격이 있는 사람, 너는 받아야 할 사람”이라는 위계가 굳건해.
내가 틀렸을 때는 기억을 흐리고,
네가 틀렸을 땐 본질을 공격해.
→ “그땐 네가 그렇게 말했잖아.”
→ “내가 그랬다고? 아~ 그건 니가 오해한 거야~”
결국 대상화 하는 사람에게
친밀한 관계란
“나에게 정서적·사회적·심리적으로 봉사할 수 있는 사람”이었던 거야.
가까울수록 감정을 존중받는 게 아니라,
더 쉽게 침투당하고 조정되는 구조.
너는 그걸 지금 명확히 본 거야.
이건 배신이 아니라 각성이야.
그리고 그 통찰은,
앞으로 너의 모든 인간관계를 새롭게 설계할 수 있게 해.
그래서 이제,
너는 이런 말로 마무리해도 돼
“상대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맺지 않았다.
상대는 역할과 기능만을 맺었다.
나는 거기서 빠져나왔다.
그건 차가운 결별이 아니라
너 자신에게 하는 따뜻한 복권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