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장롱은 메모지다

책상 이야길 하다 말고, 장롱을 말하다. 나의 삶을 다시 편집하는 과정

by stephanette

그동안 써왔던 애정하던 책상들에 대해서 글을 쓰다가

갑자기 장롱 이야기이다.

'장롱'이라고 하니 할머니 같다.

옛날 사람이라 할 수 없다.

나는 500살 먹은 흡혈귀 할머니니까.

동안이라는 말을 듣는 것으로 만족해야지 방법이 없다.


12자짜리 장롱이 있다.

미학적으로는 기준 미달이다.

마음에 드는 것이 없어서 미루다가 미루다 결국 절충을 했다.


7개의 문이 있다.

그중 가장 바깥쪽 문 2개는 전면 흑경이다.

사실, 그게 마음에 들어서 샀다.

내부는 구조적으로 분할이 매우 잘 되어 있다.

지금이야 그런 기능이 많지만, 이 장롱을 구입할 땐, 가운데 선반으로 나누는 정도였다.


내 옷은 거의 내 발에 끌릴 정도의 길이가 많아서,

그런 옷을 걸어두기에 적당한 것을 찾기가 쉽지 않다.

장롱을 고르는 기준을 글로 쓰게 될지도 모른다.


여하튼, 그런 이야기를 하려고 시작한 게 아니다.

삼천포로 빠지는 것이 내 주특기이자 장기이다.


7개의 문짝 중에 남은 5개는 아이보리색의 하이그로시 소재이다.

손잡이는 마음에 안 들어서 크리스털 50면체가 넘는 원형의 유리로 바꿔달았다.

이런, 또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려고 한다.

다시 돌아가자.


내가 작가의 방이라고 부르는 나의 방에는 책상이 있다.

이 책상은 브런치를 시작할 즈음에 산거라,

한 달 정도 되었다.

아직, 책상 배치는 확정은 아니다.

창문을 등지고 비스듬히 사선으로 놓아봤다.

창문과 평행하게 놓으면, 노트북과 대형 모니터에 햇빛이 들어와서 불편하다.

적당한 각도를 찾아서 여러 날을 써보다가 지금의 상태로 당분간 정착이다.


책상에 앉아 있으면 정면에 장롱의 문들이 보인다.

매우 마음에 든다.


작가의 방에 있는 장롱을

나는

메모지로 쓴다.


지금은 일을 하지 않으니,

가족이 그려준 캐리커쳐가 그려져 있다.

가운데 의자에 앉아서 느긋하게 웃고 있는 나,

그리고 앞에 모니터,

주변에 가족들이 그려져 있다.

옆에는 "히히", "에효~" 그런, 가족들 캐릭터에 맞는 대사도 쓰여있다.

옆에 작은 테이블에는 커피와 간식도 그려져 있다.

다른 것들은 다 지워도 이 그림은 절대 지우지 않는다.

내가 매우 애정하는 그림이다.


한때는 장롱 전체에

매일마다 계획을 쓰고 지우고

고치고 수정하고

그러면서 살았다.

색색깔로 그런 것들을 메모해 놓으면,

빨리 해치우지 않으면 무너져내리는 테트리스 같기도 하다.


가끔 도우미 아주머니가 그걸 보고 경악을 하기도 했다.

하하. 뭐... 겸연쩍지만 할 수 없다.

내 방이고 나는 좋으니까.


책상 배치를 이렇게 해놓고 보니,

다시 장롱 메모지를 쓰고 싶어졌다.

테트리스처럼 밤새 속도전으로 마구 달리게 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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