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번째 책상과 무지갯빛 계몽사 세계문학전집
내 책상이라고 하기엔 말에 어폐가 있다.
학령기 전에 언니와 같은 방을 썼다.
작은 원목 책상이 있었다.
방의 가장 넓은 면에는 벽면 가득히 책장이 있었다.
그 시절엔 '전집'이 유행이었다.
계몽사의 세계 문학 전집이나,
역사서를 가장한 정사와는 거리가 있는 조선왕조실록 전집이나
갈색과 황금색의 양장본으로 된 세계 문학 대전집 등이 있었다.
일본에서 대충 명작이라고 모아서 편집해서 만들기 시작했다는
전집은
출판업계 판매술의 일환으로
우리나라에서도 만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어릴 적엔
집집마다 전집을 팔러 다니는 상인들이 있었다.
간혹 학교 쉬는 시간에 와서
학생들을 유혹하며, 책을 사라고 강매에 가까운 판매를 하기도 했다.
나도 영업사원의 황홀한 말발에 홀려서
태어나 처음으로 아빠를 졸라댔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겨우 승낙을 받고 배송된 전집은
세계 귀신들을 자세히 묘사해 놓은 공포물이었다.
매일 밤 잠 못 들고 괴로워하면서도 끝까지 여러 번 읽었다.
어릴 적 가장 많이 울었던 시기이기도 하다.
책상 위의 책장에는
계몽사의 세계문학전집이 꽂혀 있었다.
남유럽 단편선 뭐 그런 제목이었다.
차례대로 정리해 놓으면 무지개 색깔이 나서
그런 이유로 나는 그 책들을 가장 좋아했다.
큰 책장에는 아빠가 밤늦은 퇴근길에 사 오는 소년 중앙과 보물섬이 있었다.
소년 중앙은 과학기사나 외계인, 귀신 이야기가 가득한 두꺼운 잡지였다.
그 책은 부록으로 보물섬이라는 만화책이 딸려온다.
소년중앙의 두께보다 두 배는 더 두꺼웠던 것 같다.
월간지였나 기억이 선명 치는 않지만,
책이 발행되면 아빠를 늦게까지 기다렸다.
안방의 요 위에 앉아서 각각 소년중앙과 보물섬을 펼쳐서
책 속으로 빠져들었던 기억이 난다.
가끔 아빠가 사오지 못하는 날엔
다음날 새벽 아빠의 출근길을 따라나서서
눈 덮인 경사진 도로를 따라 걸었던 기억이 난다.
한참을 걸어 내려가야 작은 서점이 있었다.
부스스한 머리를 한 두 꼬맹이는
품에 책 한 권씩 안고
하얀 입김을 뿜으며 돌아왔다.
그래서, 지금도 나는
새벽의 차가운 공기를 좋아한다.
우리 방의 가운데에는 늘 책이 쌓여 있었다.
펼쳐서 보다가 다시 읽거나
꽂을 곳이 없어서 탑처럼 쌓아놓았다.
그러니,
어릴 적엔
작은 책상이어도 상관없었다.
이미 방 전체가 책상과도 같았으니.
하늘색에 물고기 캐릭터들이 그려진 파자마를 입고서
하얀 내복을 입은 팔로 눈을 비비며
책을 읽던 생각이 난다.
장편문학보다는
다채로운 삽화와 사진, 일러스트들이
너무나 좋았다.
어릴 적 삽화를 그리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적도 있다.
그리기보다는
세상에 있는 수많은 삽화들을 다 보고 싶어서였다.
장미꽃 꼬리를 가진 당나귀라거나
째깍째깍 태엽이 돌아가는 황금 시계를 보며
허둥지둥 뛰어가는 토끼라거나
그런 그림 속에서
매우 행복했다.
이것이
나의 첫 번째 책상에 대한 기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