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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 Dec 31. 2020

004. 행복할까? 행복했었나?
행복한가?

결혼을 고민하는 너에게_ 결혼 전 생각해보면 좋을 것들

나는 굉장히 지독한 중2병을 앓았다

그 중2병은 꽤 오랜 시간 나를 지배했었다. 

물론 나는 그 중2병 덕에 지금의 삶을 살 수 있었다고 자부하고, 후회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때 썼던 글들을 다시 보지는 않는다. 


중2병의 시작은 누구나 그렇듯이 나의 존재에 대한 고민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나는 왜 태어났을까? 죽음 뒤에는 어떤 세계가 펼쳐지는 것일까? 

나는 이 세상에서 무엇을 해야 할까? 나의 존재는 의미가 있는가? 

나는 철학책을 읽으며 그런 궁금증을 풀어보려 했다. 

하지만 어디에도 정답은 없었고, 나의 고민은 깊어만 갔다. 


내가 유일하게 내릴 수 있는 결론은 ‘나는 행복하기 위해서 산다.’였다. 

행복이 무엇인지는 아직도 명확하게 모르지만, 그때에는 그것이 답이었다. 

그 당시 나에게 행복은 무엇이었을까? 막연했다. 


원하는 대학에 가면 행복해질 것이라 믿었다

원하는 대학에 가면, 어른이 되면, 그래서 원하는 것을 할 수 있게 되면, 막연하게 행복해질 것이라 믿었다.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르면서 그랬다. 그래서 더 열심히 공부를 했다. 

성적이 잘 나오면 부모님도 선생님도 칭찬해줬으니까, 

내가 그 나이에 가장 빠르게 성취감을 얻고,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이 그것뿐이었으니까. 


지금 생각해보면 참 슬픈 일이다. 

공부만이 나의 능력을 증명하고,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일이라니 너무 슬픈 일이 아닌가? 

성적을 통해 갖고 싶은 것을 부모님과 협상해 본 적은 없으나 공부를 잘하면, 

좋은 대학을 갈 수 있고, 좋은 대학을 가면 지금까지 부모님의 그늘 아래에서의 

모든 규제들이 풀릴 것이라 생각했다.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도 모르지만, 좋아하는 일을 모두 다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공부를 열심히 했다.


첫 수능의 결과는 처참했다

재수를 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냥 나는 수능 시험을 치렀고, 그 결과는 지금까지의 모의고사의 결과와는 다른 점수가 나왔고, 

그저 그랬을 뿐이었다. 


아무 생각이 없었다. 


오히려 주변 사람들이 힘들어했다.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어느새 나는 재수학원 의자에 앉아 있었다. 

물론 내가 움직여서 간 것이겠지만, 

마치 무언가에 의해 의자 위에 앉혀진 것 같은 마음으로 재수학원에 있었다. 

수업을 하니까 수업을 들었고, 자습을 하라니까 자습을 했다. 

모의고사를 보라니까 모의고사를 보았고, 점수는 다시 회복되었다. 

아니, 오히려 고등학교 때에는 받아본 적 없는 더 높은 점수가 나왔다. 


무의미한 재수학원 생활에서 내가 회복하게 된 계기는 수업이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때에는 늘 숲에서 나무 하나하나를 보면서 나무 하나하나를 관찰하는 기분이었다면, 

재수학원에서의 수업은 숲 전체를 보는 기분이었다. 

지리와 지구과학과의 접점, 수학 증명 문제와 과학과 국어의 논리라는 접점, 

모든 과목들이 찰떡 같이 연결되고, 내가 배우는 것들이 입시를 위한 것이 아니라 

삶에서의 필요한 중요한 가치들을 알기 쉽게 바꾸어 놓은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공부가 정말 재미있었다. 


그렇게 힘들었던 수학의 증명 문제가 너무나 즐거웠고, 끊임없이 증명 문제를 골라서 풀 어제 꼈다. 

아, 공부가 재미있을 수도 있구나. 이런 것을 고등학교에서 가르쳐야지. 

매번 대학입시를 위해서 달달 외우게만 하니 공부가 재미없지. 


그러다가 다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늘 하던 버릇처럼 스스로에게 계속 질문을 했다. 


“그러면 나는 왜 공부를 하지?” 


여전히 그 질문에 대한 답은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행복해지기 위해서’였다. 

행복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여전히 답은 행복이었다. 


“그럼 지금은 공부하는 것이 행복해?”

“응, 지금은 공부하는 것 자체가 너무 즐겁고 행복해.”

“그럼, 과거에 공부했던 너는 행복했니?”


여기서 나는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과거의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과거에 공부를 하는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그냥 했다. 목적은 불분명했고, 공부는 나에게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었기 때문에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은 나에게 행복을 주지 못했다. 


그냥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나름대로 생각을 정말 많이 하면서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내 삶의 핵심이라는 행복이라는 것을 미래의 것으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과거가 행복하지 않았는데, 현재가 행복할 수 있을까?
그런 과거로부터 행복한 미래를 얻을 수 있을까? 


과거에 공부했던 너는 행복했는가에 대한 질문은 나에게 어떤 답을 주지는 않았지만, 

나에게 새로운 판단의 기준이 되었다. 


무엇이든 도구를 목적으로 삼지 말자. 


그 자체가 나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는 것들을 생각하자, 

그리고 그 도구로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 보다는 그 행위에 내재된 진짜 본질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그래서 무엇인가 고민이 되거나,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 때에 한번 정도는 스스로에게 질문한다. 

이것을 해 오면서 너는 행복했니? 

물론 스스로를 정당화하기 위해서 가끔 스스로를 속일 때도 있다. 여전하다. 


하지만, 이 질문을 통해 한번쯤은 스스로를 점검하거나 돌아볼 수는 있다. 

미래를 바라보며 수단에 집착하지 않고, 행위 자체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삶. 

현재가 즐거운 삶. 그 시작은 재수 시절 

“과거의 너는 행복했니?” 

로부터였다.


Q of OUTRO

 당신은 지금 행복한가? 과거의 당신은 행복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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