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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 Feb 04. 2021

009. 내가 결혼해서 딸을 낳는다면

결혼을 고민하는 너에게_결혼 전 생각해보면 좋을 것들

나는 늘 내가 딸을 낳아 기르는 가정생활을 상상했었다.

아이를 낳고 양육하는 일은 매우 어려운 과정을 거쳐야 하며,

아이의 성별과 임신 조차도 내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나의 머릿속에서는 너무나 당연하게도 나의 첫 아이가 딸일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거기에 조건 하나를 더하자면, 나는 남편이 없는 딸과의 생활을 상상했었다.

입양도 생각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한부모에게 입양을 허락하지 않기 때문에

나의 상상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내가 아이를 낳아야 했다.

나의 상상을 현실화하기 위해서 우리나라에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 아이를 임신하고 출산하는 것이었다.

아이의 존재를 아버지에게 알리는가 알리지 않는가도 상상 속에서는 매우 고민이었다.

그 상상은 딸이 태어나면 대한민국에서 어떻게 키울 것인가에 대한 고민까지도 이어졌다.

벌어지지도 않은 일에 대한 상상을 시작한 것이었다.


언니, 저는 딸을 낳으면 그저 예쁘게만 키울 거예요

당시 나는 대학원 언니들에게

‘언니, 저는 딸 낳으면, 절대 공부 안 시킬 거예요. 그저 예쁘게만 키울 거예요.’

라고 이야기하고 다녔다.

많이 살지는 않았지만, 약 30년을 살아보니 사실 대학을 나오는 것은 삶에서 의무가 아니었고,

정말 학문에 뜻이 있어서 계속해서 학문을 업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면

대학 진학은 삶에서 큰 의미를 갖는 것 같지 않았다.


나는 어릴 때부터 남녀가 동등하게 경쟁하는 사회에서 살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며 살아왔다.

그리고 실제로 차별받지 않으며 살아왔다.

여중, 여고를 나왔으니 사실 나의 세상에는 큰 차별은 없었다.

내가 학창 시절을 보내는 시기에는 우리나라에 젠더와 관련한 개념이 지금과 같지 않아서

나도 차별을 받으면서도 그저 지나쳤던 일들이 있었을 것이다.

대학도 마찬가지였다.

여성의 비율이 높은 학과에서 생활하고, 사회의 이슈보다는 먹고사는 일에 집중하고,

나와 맞는 친구들과 어울리다 보니 내가 남녀차별을 경험할 일이 많지 않았다.

그리고 당시에 나 역시도 남성중심주의적인 사회에서 교육을 받고 살아왔던 터라

젠더와 관련한 이슈들에 관심이 많지 않았다. 은연중에 내가 남녀차별을 받으면서도 몰랐을 것이고,

나 자신도 의식하지 못한 채 남녀차별적 발언을 하기도 했었다.


삶에서 사회생활을 하기 전까지는 크게 남녀 차별을 느끼며 살아오지 않았으나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젠더 차별은 나의 삶에 들어왔다.

특히 취업을 한 후 사회적으로 정해놓은 결혼 적령기가 가까워질수록

그 차별 경험은 피부에 더욱 가까워졌다.


결혼 적령기인데 연애를 하지 않거나 결혼을 할 생각이 없는 여성들은

여성으로서의 매력이 없는 듯한 취급이나 일이나

자기 자신에게 지나치게 몰두한 여성으로서 인생의 과업을 달성하지 못하는 취급을 당했다.


왜 연애를 안 해? 왜 결혼을 안 해? 결혼을 해야지. 연애를 해야지. 정도의

꼰대 발언은 그냥 웃어넘길 정도이다.

여자들끼리도, 남자들끼리도 쟤는 성격이 저러니까 연애를 못하지, 재는 왜 저렇게 이상해?라는

험담도 들리고, 때로는 연애를 못하는 것으로 비웃음을 당하기도 했다.

 이는 비록 나에게만 있었던 일이 아니다.

나의 직장 동료 선후배가 당하는 것을 보고, 들어야 했다.


심지어 우리끼리는 이런 이야기도 했었다.

“우리나라에서 노처녀로 살려면 갖춰야 하는 덕목이 있어.
인내심! 같은 일로 화내거나 짜증을 내도 20대 여자는 어려서 그러려니 하는데,
 40 가까이 된 결혼 안 한 여자가 화내거나 짜증내면 안돼.
‘결혼은 안 해서 그래.’ 또는 ‘저러니까 결혼을 못하지.’라는 소리를 듣거든.
그러니까 우리나라에서 결혼 안 하고 사회생활할 거면 무엇이든 참아야 해.”


얼마나 황당한 이야기인가.


이러한 사회의 언행들이 개인의 매우 사적인 영역을 침해하는 것임을 알게 된 후에는

‘연애를 왜 안 해? 결혼해야지. 결혼 생각 없어?’라고 말하는 사람에게는

‘제 과업이니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하고 웃으며 넘기고는 한다.

혹은 결혼이나 연애를 하지 않는 여성을 비웃거나 헐뜯는 사람들에게는

‘그 사람이 일이니 그 사람이 알아서 하겠지. 연애하고 결혼하면 모든 인생의 고민이 해결이 되는 건가?’ 하고

도 넘게 화를 내기도 한다.

더 현명한 방법으로 대처하고 싶지만,

불쑥불쑥 사람들의 예의 없음에 화가 날 때가 있다.


결혼을 한다고 무언가 해결되는 건 아니다

자, 그렇다면 사회생활을 하면서 결혼을 한 여성들에 대한 사회의 태도를 살펴보자.

예전에 비해 기혼 여성에 대한 사회적 처우나 육아와 관련한 환경이 많이 개선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여성은 결혼을 고민하는 순간, 임신과 출산에 대한 고민도 함께 시작한다.

이는 임신과 출산에 대한 계획이 있는 여성이건, 계획이 없는 여성이건 모두의 이슈이다.

나의 몸이 직접적으로 경험하는 일이며, 나의 몸의 변화가 바로 느껴진다.

대부분의 남자들은 이것을 공감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당연한 일이다.

이해하려고 노력해도 경험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기 때문에 완전하게 공감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래도 조금만 감수성이 있는 남성이라면 여성의 이러한 고민들을 이해하기 위하여 노력할 것이라 믿는다.


그러나 임신과 출산, 육아는 가정의 문제에서 끝나지 않는다.

사회에서는 인구가 감소하고, 사회가 고령화되니 임신과 출산을 장려하지만,

여성들에게 이는 자신의 직업과 삶에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이슈이다.

결혼을 하는 그 순간부터 회사에서 여성은 경계의 대상이 된다.

인사 관리에서 특히 그렇다.

여성은 사회 제도가 개선이 되건 사내 제도가 개선이 되건 몸으로 약 685일 동안 아이를 품어야 한다.

그 과정에서부터 여성은 제외의 대상이 된다.

자본주의 사회 하에서 임신과 출산, 육아 때문에 업무에서 몇 달을 떠나 있던 여성이

다시 자신의 자리에 복귀하는 것은 회사의 입장에서는 단기적으로 손실 일지는 모르겠다.

- 이 부분에 대해서는 사실 나도 더 공부를 해야 하기 때문에 더 젠더 문제 측면으로 접근하는 것은

나에게 무리가 있다. 그러니 이해해주기를 바란다. 논쟁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의 생각과 느낌이다. –


그러나 결혼과 함께 여성에게 수반되는 고민의 주제가

나의 직업적인 측면에서 나를 불리한 위치로 인도한다면,

어떤 여성이 기꺼이 임신과 출산과 양육을 하겠는가.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것을 행복으로 받아들이고 열심히 상황을 타개해 가는 여성이 많다.

정말 훌륭한 여성들이다.

그러나 여성은 결혼과 함께 직장에서 알게 모르게 업무적으로 소외되는 경우가 있다.


결혼을 안 하면 안 하는 대로 인간으로 태어나 마땅히 해야 하는 과업을 하지 못하는

인간답지 못한 취급을 당하고,

결혼을 하면 하는 대로 업무나 직업 상 소외를 당하는 대상이 된다.


나는 분명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살면, 남성과 여성에 상관없이 똑같이 경쟁하고,

 똑같이 살 수 있다고 배웠는데, 그리고 그렇게 살았는데…

사회에 나와보니 내가 생각했던 사회가 아니었다.


어느새 나는 눈치를 보고 있었고, 무언가 결혼을 하면 직업을 잃고,

직업을 선택하면 결혼을 못할 것만 같은 양자택일의 감옥에 갇힌 것 같았다.

 

그래서 대학원으로 돌아가면서 ‘내가 딸을 키우면, 절대 공부 안 시켜야지!’라고 생각했다.


공부 많이 한 똑똑한 여자는 등급이 떨어진다니.. 나는 또 그렇게 결혼과 한걸음 멀어졌다

더 슬픈 건, 우리 사회에서 대학원 나온 여자들이 결혼정보업체에서는 또 등급이 한 등급 떨어진다고 하더라.

공부 많이 하고 똑똑한 여자는 결혼 조건에서 부정적 요소란다.

나는 또 그렇게 결혼과 한걸음 멀어졌다.


물론, 결혼 정보 업체의 등급 기준 –어떤 기준인지는 모르겠지만-에서 멀어진 것이다.

나는 내가 결혼하기에 부족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그런 조건으로 나의 결혼 여부를 판단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당시에 나는 세상은 나의 생각과 다르게 다양한 조건으로

결혼의 대상으로서 여성을 줄 세우고, 사회에서는 결혼과 임신, 출산을 이유로 소외를 시킨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대학원에서 언니들에게 ‘나는 딸 낳으면 절대 공부 안 시키고, 예쁘게만 키울 거예요!!’라고

외치고 다녔다.

내 딸은 굳이 힘들게 노력해서 경쟁에서 소외당하는 절망감을 느끼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었고,

결혼이 인생의 중요한 과업이라면 사회의 기준에 맞춰서 편하게 결혼을 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있지도 않은 딸의 미래를 당시의 기준으로 판단하는 어리석은 생각이었고,

동시에 내가 겪는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보다는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태도였지만,

당시에는 그런 마음이었다.  


물론 지금은 내가 처음으로 사회생활을 하던 시기보다 훨씬 더 많은 것들이 개선되었으리라 믿는다.

–사실 그 이후로는 여성이 크게 차별받지 않는 회사에서 일을 했고,

그 이후에는 내 사업을 하기 때문에 현재의 상황을 잘 모른다.


그리고 무조건 내 첫 아이가 딸일 것이라는 상상을 하지도 않고,

 나의 이러한 상상이 혼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여성들의 삶에 대해서도,

한부모 가정에서 자라는 아이들의 삶과 정서에 대해서도,

아이의 존재를 알게 되었을 때의 아이 아버지의 정서에 대해서도

전혀 파악하지도 못한 것이며,

남편 없이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이

나와 내 아이에게는 또 어떤 의미일까 싶어서

그래서 일정 나이 이후로는 남편이 없는 아이와 나만의 가정생활에 대해서는 상상하지 않는다.


다만, 혹시라도 남편이 없이 아이를 낳아 길러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피하지 말고 받아들이자는 생각을 한다.

모든 것은 발생하면, 그때 최선을 다 해야지 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내가 어떤 상황에서 어떤 성별의 아이를 낳고 양육해도,

혹은 아이를 낳지 않아도,

젠더이슈로 다른 성보다 더 많은 것을 고민하고 걱정하지 않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의 자녀도, 당신의 자녀도

본인들의 선택에 따라 차별받거나 편견 섞인 시선을 받지 않았으면 한다.


Q of OUTRO

어떤 세상을 만들어 가고 싶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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