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연옥에서 진주냉면을 먹으며..
집 앞에 새로운 가게가 생겼다.
처음 가게가 지어질 때부터 보았는데 친구와 지나가면서 ‘카페인가? 이 코로나 시국에 가게를 오픈한다니.. 잘 되려나?’하면서 걱정이 아닌 걱정을 하며 지나갔었다. 그 가게에 가려면 작은 길을 하나 건너야 하는 이유로 가게가 영업을 시작한 뒤로도 그 가게는 그저 길 하나를 사이에 놓고 안부가 궁금한 정도의 가게였을 뿐 내 일상에 들어오지 않았다.
지난 주말 집 근처에서 친구를 만나기로 했고, 약속 장소가 멀지 않아 집에서부터 조금 걸어보기로 했다. 집을 나서자마자 우연히 신호가 바뀌었고, 나는 길을 건넜다. 그리고 그 가게 앞을 지나가게 되었다. 가게는 진주 냉면을 전문으로 하는 집이었다. 며칠 전부터 냉면이 먹고 싶었지만 배달 냉면은 맛이 없고, 1인분은 시킬 수 없는 관계로 냉면을 고파하던 나에게 그 가게에서 진주 냉면을 판매한다는 것은 희소식이었다. 가게 앞을 지나가면 반드시 꼭 와보리라!! 하면서 냉면 가게를 지나쳐 친구를 만나러 갔다.
그리고 며칠 뒤 드디어 그 냉면 가게에 가보게 되었다.
심심한 평양냉면보다는 약간은 자극적인 함흥냉면을 좋아하는 나에게 진주냉면은 취향에 매우 들어맞았다. 집 밖에 나오기 귀찮아 배달을 시켜 먹던 내가 대충이지만 옷을 챙겨 입고 밖으로 나가 이틀 연속 그 가게에서 냉면을 점심으로 먹었다. 냉면을 먹으러 가는 그 짧은 길과 냉면을 주문하고 기다리는 그 시간이 나에게 모처럼 설렘을 안겨 줄 정도이다.
진주냉면이 나오고 한 입을 먹는 순간 너무 맛있어서 혼자라는 것을 잊고 발을 동동 구르며 콧노래를 불렀다. ‘냉면 한 젓가락으로 이렇게 누군가에게 행복을 줄 수 있다니.. 이 사람들은 참 멋진 사람들이다. 능력자들이다!!’라는 생각까지 했다. 그러고 보니 이 냉면집은 체인점이다. 지방에 본점을 두고 전국 각지에 체인점이 있다. 그렇다면 약간의 맛의 차이는 있겠지만 그래도 맛의 기본은 비슷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집 앞 냉면 가게에 있는 사람들은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진짜 능력자는 이 냉면을 만들어 낸 사람인가? 아니면 본점을 세운 사람인가? 아니면 이것을 체인점으로 만들어 전국 각지에서 진주냉면을 맛볼 수 있게 하는 사람인가? 아니면 지금 내가 먹고 있는 냉면을 만드는 저 사람들인가?
어떤 능력이건 한 사람에게 음식으로 이렇게 큰 즐거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능력인 것은 분명하다. 동시에 이러한 생각도 들었다. 생각해보면 시답지 않은 능력일 수도 있겠다. 매뉴얼이 있어서 그대로 면을 삶고, 양념을 담고, 고명을 올리면 되는 것 아닌가? 그저 매뉴얼을 읽고, 그대로 실행할 수 있는 정도의 이해력을 지니면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냉면을 만드는 일이 시답잖은 일이라고 비하하려는 것이 아니다.
냉면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모르지만, 매뉴얼대로 만들고 그릇에 담아내는 것이 냉면을 만드는 일의 전부라고 가정을 해보자. 아주 간단한 과정과 아주 기본적인 생각과 행동으로 만들어내는 이 냉면이 누군가에게는 큰 기쁨을 준다. 나는 냉면을 한 젓가락 먹을 때마다 발을 동동거릴 정도로 기쁘고 행복했다. 그 맛이 나를 기쁘게 만들었다.
냉면을 만드는 과정이 길건 짧건, 냉면을 만드는 능력이 간단하건 복잡하건 상관이 없다는 이야기이다. 모든 능력은 시답잖은 동시에 매우 위대하다.
생각해보니 내가 사람들의 능력에 차등을 두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무언가 복잡하고 오랜 숙련 기간을 거쳐야 하고, 오랜 공부를 해야 얻는 것들만이 멋진 능력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 과정이 단순하고, 아주 손쉽게 얻을 수 있는 능력 역시 어떤 기술 못지않게 의미 있을 수 있다.
나는 누구의 능력의 어떤 능력을 부러워하고 있었던 것일까?
몇십억이 오가는 거래도 매일 하다 보면 그저 내가 할 일일 뿐 엄청난 능력이라고 생각되지 않을 수도 있다. 정치인들도 연예인들도 우리가 유명하고 멋지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그저 매일 자신의 일을 할 뿐 스스로가 엄청난 일을 하고 있다고 의식하지 못할 수도 있다.
나를 위해 한 끼를 차려주던 엄마의 요리도 위대한 능력이었고, 나의 즐거움을 위해 목마를 태워주던 아빠의 힘도 엄청난 능력이었다. 걸어 다닐 준비를 하기 위해 벽을 잡고 일어서는 아가의 힘도, 하연옥에서 냉면을 만들고 가게를 청소하는 분들도 역시 위대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면 야심 차게 직장을 그만두고 나와 사업을 하면서 내가 생각한 대로 일이 굴러가지 않을 때마다 자존감이 조금씩 내려앉았었다. 나 자신의 능력 없음을 남몰래 자책하며 살고 있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일이 잘 되고 있어.'라는 것의 기준 역시 생각하기 나름이고, 어쨌거나 맨 땅에 헤딩을 하며 몇 년째 이 일을 붙잡고 버티는 것도 능력이다 싶었다.
대체 나는 무엇을 능력이라고 생각하고 어떤 능력을 가지고 싶었던 것일까? 매일 아침 눈을 뜨고 나의 일을 하는 것이 시답지 않은 하루 일과인 동시에 매우 멋진 능력일 수도 있겠다 싶다.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모든 사람들 모두가 멋진 능력을 가지고 오늘 하루를 살고 있구나. 그들 자신은 잘 느끼지 못하겠지만 말이다.
하연옥에서 냉면을 먹으면서 생각했다.
세상의 모든 능력은 시답지 않으면서 위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