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에 나온 동물, 식물 그리고 무생물 3
마디 1
주역 62 괘는
사이코패스를 닮은 30대 남성이
여성들을 괴롭히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런 어려운 상황에서도
꿈을 키우는 젊은 여성들이 있다.
‘날아간 새’는 무슨 의미이며
‘희망’과는 어떤 관계가 있는지
다음의 이야기를 보자.
마디 2
여기 사이코패스를 닮은
30대의 건장한 사내가 있다.
그 사내는 모든 여성의 앞길을 가로막고
훼방을 놓는다.
만약 뜻대로 안 되어
그 여성이 도망갈 때는
그 남성은 기어이 쫓아가서 상처를 입힌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그 남자는
잘못하여 죽음으로 이어질 만큼
여성에게 매우 폭력적인 행사를 공공연하게 한다.
만약 여성들만 사는 곳에
이런 폭력적인 남성이
같은 하늘 아래서 산다면?
아니 그것도 그 남성이 윗사람이어서
그의 말을 그 여성들은 거역할 수 없다면?
그 여성들은 사는 게 지옥이고
숨이 막혀 하루하루를 견디기 어려울 것이다.
그런 고통받는 여성 중
꿈 많은 10대의 소녀가 있다.
그 소녀는 그런 답답함을 해소해 줄 수 있는
구세주 같은 사람과 만나기를 학수고대한다.
그런 소녀의 하소연을 듣고(62-1) 난 후
주역은 이렇게 말한다.
“새를 날아가게 하면
이로 인하여 흉하다.
[비조(飛鳥) 이흉(以凶)]”
새를 잡으려고 화살을 겨누던 사람은
아차 하는 한순간에
새는 이미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러니 새가 사라진 공간을
멍하니 쳐다볼 수밖에.
그래서 유럽 속담에는
‘새는 날아가버렸다’라고 한다.
이 속담의 뜻은
‘목표를 잃고 허망한 상태에 있음’을 말한다.
주역도 마찬가지이다.
‘날아가버린 새’는
한순간 방만한 틈을 타
새는 날아가버려
잡고자 하던 희망이 송두리째 무너짐을 뜻한다.
주역은 그 10대 소녀에게
‘새를 날아가게 하면’ 희망이 없어지므로
희망이 무너져 그로 인해 흉하게 된다고 말한다.
여기서 ‘날아갈 수도 있는 새’는
이웃한 세상에서 혁신을 애타게 주장하며
홀로 애쓰는 장년의 남성을 지칭한다.
그 10대 소녀의 유일한 희망은
그 장년의 남성을 만나
개혁 세상을 위해 한 몸 불사르는 데 있다.
그런데 사이코패스 같은 사람이
길목에서 막으니 허망할 수밖에.
주역은 그 소녀에게
희망의 끈을 놓치지 않도록
은근하게 말한다.
즉 ‘새를 날아가게 하면
그로 인해 흉함이 생기니’
그런 상황이 오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이른다.
주역은 그 소녀에게 희망의 새를
언젠가는 만날 수 있으니
그냥 있지 말고 만날 때 힘이 되도록
자기 연마를 하라는 뜻이다.
‘날아가게 하면’ 다시 새를 보기는 어렵다.
비조(飛鳥)는 ‘날아가버린 새’로
희망이 사라진 것도 되고,
‘날아가버리게 하면’으로
희망이 아직은 살아 있어
희망이 사라지면 흉하니
그렇게 만들지 말라는 뜻도 된다.
요사이 ‘묻지 마’ 폭력으로 인심이 흉흉하다.
등산로도 위험하다고
이불 밖으로 나가지 말라고 한다.
아무리 그런들 그렇게 살아야만 하나?
사이코패스 같은 사람이 있더라도
반대로 혁신의 세상을 위해
애쓰는 사람들이 있는 한
세상은 살만하지 않은가?
* 62 괘 괘사에는
‘날아가버린 새는 소리를 남기니
[비조(飛鳥) 유지음(遺之音)]’라는
구절이 나온다.
여기서 ‘날아가버린 새’는 본문에서 언급하였듯이
‘희망의 새이니 날아가지 않도록’ 하라는 뜻이다.
그런데 ‘새’는 구체적으로
혁신을 주창하며 세상을 바꾸자고 목소리를 높이는
장년의 남성을 가리킨다.
그 장년의 남성은 사이코패스 같은 사람으로부터
고통을 받는 여성들을 생각해서
뜻을 펴려고 둥지를 떠나며
끼륵끼륵 슬피 운다는 뜻이다.
주역은 그 장년의 남성에게
공포정치로 사람들을 못살게 구는
윗사람 편을 들지 말고
고통받는 아래 여성들을 생각해서
그들을 위한 혁신 운동을 하라는 뜻이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