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은 퍼즐 같지만 (5)
꿈에서 ‘여러 사람’의 실체
며칠 후 박사는 김 연구원에게 “지난번 그 여성의 꿈 이야기에 관해 진전 사항을 들어보고 싶군요?”라고 묻는다.
김 연구원은 “지난번 말씀하셨던 꿈의 원인 제공자 역할을 했던 ‘여러 사람’에 대해서 조금 더 캐물었지요”라고 말한다.
“그래서요?” 박사는 흥미 있어하며 꿈 이야기를 재촉한다.
“그 여성 내담자가 말했던 ‘여러 사람’은 같은 또래 친구들이지요. 그 여성보다 덩치가 큰 깡패 같은 얘들이었지요.”라고 김 연구원은 설명한다.
김 연구원은 “깡패 같은 얘들은 작당하여 어렸을 때 교통사고로 팔과 다리 쪽에 상처가 남아 있는 같은 반 친구를 왕따를 시켰지요. 그 친구에게 잘 대해주었다는 이유로 그 여성 내담자는 폭행을 심하게 당했고 그날부터 그 친구와 같이 왕따 취급을 당했지요.
평소 잘 알던 친구들이라 믿었는데 일진회처럼 작당하여 때리고 못살게 구는 등 왕따를 시키니 사람에 대한 믿음이 완전히 깨졌지요. 예민한 시절인 중2 때 시작해서 중학교 내내 그랬어요. 스무 살이 넘어 서른이 다 되었는데도 꿈속에서 나타나니 후유증이 얼마나 껐는지 짐작할 수 있지요.”라고 말한다.
박사는 “어렸을 때 감정에 깊이 영향을 준 상처, 특히 사람에 대한 믿음이 깨졌다면 두고두고 사람과의 사귐에 대해 영향을 주지요. 왕따의 후유증이 서른이 다 되었는데도 꿈속에서 나타난 것처럼 새로운 사람과 사귐의 관계를 맺을 때도 영향이 컸을 법한데요?”라고 묻는다.
김 연구원은 “네, 정말 그래요. 그 여성 내담자는 사람에 대한 믿음이 깨져서 그 후유증이 눈에 띌 만큼 크게 나타났지요.”라고 말을 시작한다.
박사는 관심 있는 듯이 “어떤 후유증이 나타났는데요?”라고 김 연구원의 말을 재촉한다.
김 연구원은 “같은 또래의 친구들과 새로 맺는 사람 사이의 사귐에서 눈에 띄게 경계심이 심했지요. 본인이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여성에 대해 못 믿겠다는 듯이 여간해서는 마음을 열지 않았지요.”라고 대답한다.
박사는 “예를 들면요?”라고 흥미 있는 주제를 만났다는 듯이 이야기를 재촉한다.
김 연구원은 “중2 이후에 학교 친구를 거의 사귀지 못했어요. 뒤에서 친구들이 무슨 말을 하면 ‘나에게 뒷담화하는 것은 아닐까, 욕하는 것은 아닌지?’라고 의심부터 했지요. 이후 고등학교에서도 왕따 걱정 때문에 내내 친구가 없었고요.”라고 대답한다.
박사는 “그러면 고등학교 졸업 이후에는?”이라고 박사는 다시 묻는다.
김 연구원은 “전문대를 졸업하자마자 취직해서 직장을 가졌지요. 그러나 6개월이 멀다 하고 직장을 자주 옮겼지요. 대부분 고객과의 관계에서 불화가 생기는 것이 아니라 같이 근무하는 또래 여성 직원들과 사귀기 어렵다는 이유로 그만두지요.
또 내담자에게는 언니가 둘 있는데 언니들과 잘 지내려고 해도 배신을 당할까 보아 선뜻 가까이 가지 않는다고 말하지요. 특히 가족관계에서는 잘 쓰지 않는 배신이란 용어를 써가면서요.”라고 말한다.
박사는 “배신을 받지 않으려고 아예 배신 가능성을 상정해 놓고 처음부터 사람을 깊이 사귀지 않는군요.”라고 말한다.
김 연구원은 “네, 그런 것 같아요. 배신은 정말로 참아내기 어렵거든요. 마음을 푸근하게 써야 하는 것을 알지만 마음의 상처가 생각나서 그렇게 하지 못하니까요. 또래 여성들과 사이는 물 위에 기름이 둥둥 떠 있듯 섞이지 않고 늘 그런 상태를 유지하고 있지요.”라고 대답한다.
김 연구원은 내담자 여성의 배신을 말하면서도 옛날 자신의 상처가 생각나는 듯 자기도 모르게 씁쓸한 기분을 털어놓는다.
박사는 김 연구원의 그런 기분을 모른 척 넘기며 “물과 기름 사이라! 믿음과 배신의 관계 같군요. 사람 사이의 믿음을 주는 관계가 먼저 회복되어야 배신의 문제는 서서히 풀리지요. 상담 중에 사람에 관한 믿음이 다소나마 회복되는 모습을 확인하기를 기대해야겠지요.”라고 김 연구원도 들으라는 듯 말한다.
김 연구원은 “그러려면 시간이 걸리겠지요. 아직은 그런 기미는 뚜렷하게 보이지 않지만 그럴 가능성은 있지요.”라고 말한다. 박사는 김 연구원이 말한 ‘그런 가능성은 있지요’라는 말속에 왠지 긍정적인 기대를 정도 이상으로 내보이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박사는 그렇지만 사람에 대한 배신보다는 믿음 쪽에 우선을 두는 김 연구원의 생각을 기꺼워하며 “가능성요? 혹시 새로 맺은 사람과의 사귐에서 그런 가능성이 있나요?”라고 관심이 있다는 듯 묻는다.
김 연구원은 “남성들과의 관계에서 가능성이 엿보이지요. 최근에 남자 친구를 사귀었는데 11살 연상이지요. 나이 차이가 많은 것 때문에 불편한 점이 있었느냐고 물어보면 ‘나를 잘 이해해주고 잘 챙겨주어서 불편한 점은 없다, 믿음이 간다’라는 이야기를 많이 하지요.
그 내담자 여성은 이해해준다, 챙겨준다, 믿음이 간다 등을 자주 말하고 있어 믿음에 대한 허기증에 시달린 사람처럼 얘기하지요. 뭐랄까, 믿음에 대한 결핍의 냄새가 물씬 난다고 할까요?”라고 말한다.
박사는 “사람에 대한 믿음을 심어주는 것이 앞으로 상담의 주요 목표가 될 것 같군요”라고 말한다.
박사는 김 연구원과의 대화를 멈추고 꿈 분석을 원하는 사람을 맞을 준비를 한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