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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파노 Nov 23. 2022

걱정 전담 허수아비

마디 1

     

아버지 연명 치료를 어떻게 했으면 좋을까 여동생이 물어왔다. 아버지는 폐렴 증세가 있어 입원하신 지 며칠 되었다. 평소에도 아버지는 과감히 연명 치료를 거부해왔었다. 그런 사실을 말하면서 연명 치료는 안 하는 것이 좋겠다는 내 의견을 말했다.      


여동생은 형제들 전부의 동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내 의견을 말하면서도 잘한 일인가 의문으로 자꾸만 나를 괴롭혔다. 그때 생생하게 심리상담을 주제로 한 외국 드라마를 본 기억이 떠올랐다.


어느 날 한 젊은 여성이 우울하고 걱정스러운 모습으로 상담자를 찾아왔다. Client 즉 고객은 20대로 청순미가 흐르는 여리여리한 여성이었다.     


그 고객은 문제 밖을 빙빙 돌면서 진실로 해야 할 얘기는 하지 않고 다른 얘기만 했다. 얼마쯤 지나 상담자는 하소연하는 문제의 본질을 들을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였다. 그 고객에게 문제를 바로 정면에서 맞닥뜨리게 했다. 고객은 그때야 어렵게 자기 속마음을 내비쳤다.     


상담자: 집안 얘기나 동생 얘기를 하려고 오신 것 같지는 않아 보이시는데? 

고객: 내 입으로 말하기조차 싫어서요….

상담자: 옆에 필기 용구가 있는데, 글로 쓰시는 것은…, 괜찮겠습니까? 

고객: 네…, 여기….

상담자: 으~음, 얼마나 되셨나요?

고객: 5주.

상담자: 종양 전문 의사 선생님은 만나 보셨나요?      


마디 2     


우리 마음은 한없이 여리여리해서 마음의 속내를 속속들이 풀어내기가 힘들다. 병으로 아픈 것보다 병에 대한 두려움이 더 아프게 한다. 그래서 마음에 걱정과 불안이 있을 때 우리의 마음은 교활하게 허수아비를 만들어 마치 그것이 마음인 양 내세운다.      


즉 마음에 깊은 걱정거리가 있으면 마음은 걱정해주는 존재를 자기 대신 만들어 놓고, 마치 허수아비를 세우듯. 자기는 그 허수아비가 걱정해주니 태연하게 걱정에서 벗어나 있으려고 한다. 우리 마음은 이 얼마나 교활한가?     


병원을 가야 하는데 상담자를 찾는 것은 불안하기 때문이다. 

마음이 지는 짐은 감내할 만큼만 지기에 우리는 마음을 흠이라 나무랄 수도 없다.      


그러나 스스로 용기를 낼 수밖에. 속담에 Who fears to suffer, suffer from fear.라는 말이 있다. 고통이 닥쳐오리라는 두려움이 실제 아픈 고통보다 더 크다.      


맞을 때는 먼저 매를 맞는 것이 훨씬 낫다. 왜? 매 맞을까 두려움 속에서 지내는 시간이 길면 길수록 아까운 금쪽같은 수명은 더 단축되니까. 오늘따라 평소 연명 치료를 과감히 거부하셨든 아버지의 모습이 자꾸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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