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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파노 Dec 19. 2022

해방은 소망인가, 숙제인가?

-시간으로부터 해방 # 4

얼마 전 드라마 ‘해방 일지’가 바람을 일으켰다. ‘해방 일지’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해방 대상은 무엇일까?      


세상을 요령껏 살면서 주류를 차지하는 그렇고 그런 사람으로부터 해방일까? 

우리 삶에 진득진득 붙어 있는 익숙한 가치관으로부터 해방일까? 

옴짝달싹 못하게 짜진 나를 에워싼 각종 제도로부터 해방일까?

알게 모르게 굳어진 지겨운 일상에서, 또 생활 패턴에서 벗어나고픈 해방일까?      


많고 많은 ‘해방’의 대상 이를테면 구속, 억압, 부담 등 중 결국 ‘시간’으로부터 해방으로 수렴되는 것은 아닐까?      


과거에 붙잡혀서 추억을 먹고사는 사람 즉 호르니스트 형 인간처럼 사는 것. 아니면 불확실한 미래에 목매달고 오늘을 죽이면서 사는 사람 즉 아네모필 형 인간처럼 사는 것. 누구도 어느 한 인간형을 바람직하다고 기꺼이 선택하지는 못할 것이다.      


빠르게 변화하는 미래를 놓치는 것은 아닐까 그런 불안 속에 사는 것이 싫어 해방되고픈 사람처럼. 또 미래에 우뚝 서기 위해 온종일 발 빠르게 움직이며 살다가 이젠 지쳐 내려놓고 살자며 해방되고픈 사람처럼. 사람들은 아네모필형과 호르니스트형의 중간 어디에 몸을 걸치고 외줄 타기 하며 살고 있을 것이다.           


해방은 광복을 얻었던 그 시대의 환희처럼. 뻥 뚫리는 속 시원함을 만끽하며 사는 것이 진정 해방일 테니. 그래서 해방은 바람이고 숙제일 것이다.      


해방은 소소한 일상에서 한 가지라도 즐거운 일이 있었으면 하고 바라는 소망일 테니. 과거로부터의 해방할 거리를 미처 안 했든, 또 미래에 대한 준비가 불안했든 늘 찝찝한 것처럼 다 마치지 못한 숙제일 것이다.      


드라마에선 출근길에 기차 밖으로 ‘오늘 당신에게 좋은 일이 있을 겁니다.’라는 간판이 지나친다. ‘해방 일지’의 여주인공은 차창 밖 간판의 글씨에 자꾸 마음이 가는 것을 어쩌지 못한다.      


그렇다. 아마도 해방은 미처 하지 못한 숙제 중 한 가지라도 했으면 하고, 그래서 즐거운 일이 한 가지라도 생겼으면 하고, 바라는 소망일 테니. 많은 것을 바라지 말고 여러 숙제 중 한 가지라도 이루어지면 소망이 이루어져서 좋지 않은가?


소망하면 틀림없이 이루어질 것이다. 비록 숙제를 꼭 해야 한다는 부담은 스스로 만든 것이니. 나만 좋다면. 젠장! 숙제를 꼭 해야 하는 것도 아닌데, 내일로 미룬다고 뭐가 달라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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