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물이 없다(무구, 无咎)

-주역에서 본 생각거리 3

by 스테파노

‘허물’은 풀어쓰면 ‘잘못 저지른 실수 또는

남에게 비웃음을 살 만한 거리’이다.


이를 강력히 부인하여 ‘허물은 없다’라고 할 때는

실수 등으로 남들로부터 비난받을 걱정이 없으니

안심하고 지내라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허물은 없다’라는 말은

아래에 ②의 ‘공동체에서 외롭지 않음을 느끼게’ 하는

격려의 말이다.


격려(encouragement)는 용기(courage) 세우기이다.

사람들은 어떨 때 용기가 샘솟듯 솟아 나올까?


어느 심리학자는 말하길, 용기가 날 때는

① 자신의 강점을 인식할 때,

② 공동체에서 외롭지 않음을 느낄 때,

③ 희망 속에 새로운 가능성을 보일 때라고 한다.


주역에는 ‘허물은 없다’라는 구절이 참으로 많이 나온다.

그만큼 그때나 지금이나 사회에서 구설수나 실수로

남들의 비웃음을 살 염려가 많다는 뜻이다.


사람들은 건듯하면 실수하거나

건듯하면 비웃음을 살만한 거리에 노출되어

머리를 싸매고 고민한다.


머리를 싸맨다고 실수한 일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비웃음 살 일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냥 걱정만 산속에서 길 잃고 헤매는 사람처럼 끝도 없이 한다.


예컨대 주역을 잠깐 보자.

건 나라의 어느 청년은 서른 살이 넘도록

책임자 자리에 도전했으나 번번이 실패했다.


급기야 이번에도 실패해

자기보다 어린 후배에게 책임자를 빼앗기고

그 밑에서 일한다.


그 청년은 실패자이니 주류에 들지 못하고

주류들을 쫓아가기 바쁘다.

거친 남성 위주의 사회는 그저 앞만 보고 내달리니까.


그 청년은 ‘능력도 없는 무지렁이’라고

멸시당하면서도 능력을 인정받기 위해

이일 저 일을 가리지 않고 모두 떠안는다.


그러다 보니 그 청년은 일이 많아서 자꾸 코너에 몰린다.

할 수 없이 시간 내에 일을 마쳐 비난받지 않으려고

일을 대충대충 한다.


그러면 대충대충 했다고 또 비난받을까 걱정이 산만큼 크다.

결국 비난받을 걱정으로 두려워

잠도 잘못 자고 거칠하니 몸을 상하게 한다.


주역은 그런 악순환에 빠진 사람을 안쓰럽게 여겨

‘허물은 없다’라고

남들로부터의 비난 걱정을 털어내 버리도록 격려한다.


혹자는 ‘허물의 알맹이 내용은 없고,

그저 선언적으로 허물은 없다고 하니 말 잔치처럼 느껴진다.’라고

낮게 평가할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다. ‘허물은 없다’라는 말은

지면 관계상 다 쓸 수는 없지만

대화의 맨 나중에 나오는 최종 결론적인 말이다.


예컨대 남들로부터 받을 비난이 무서워 움츠릴 때

그런 비난을 과감히 뚫고 지나간다면

그때야 비로소 허물은 없어지게 된다는 의미이다.



사람들은 살면서 실수나 남들의 비웃음 살만한 거리를

만들지 않고 살아갈 수는 없다.

사람들은 크든 작든 그러한 허물을 뒤집어쓰고

험난한 환경을 바우어 나간다.


이때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그러한 사정을 이해해

격려의 말을 던져 줄 때

삶의 엔진에 윤활유를 넣어주는 것이다.


힘들게 용기를 억지로 세워 눈물겹게 사는 사람을

괜히 악플로 삶의 의지까지 흔들어 놓을 필요가 있겠는가?


격려는 치료제이며 악플은 독약과 같다.

악플을 쓰는 사람이 없는 브런치는

하얀 백지같이 맑아서 참으로 좋다.

keyword
이전 02화마침내 끝나다(종, 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