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요리는 누가 다 했을까?
나는 그 분주함을 존경한다.
나는 골목을 좋아한다.
어렸을 때의 기억 때문이다. 풍족하진 않은 시간들이었다. 하지만 골목길이 주는 아늑함은 힘든 시절의 위로였다. 골목골목엔 어느 집들이 가득했다. 골목의 벽에 난 작은 창문들은 대개 부엌의 것들이었다. 저녁 시간이면 그 창문으로 노란 불빛과 찌개 냄새, 그리고 음식을 준비하는 달그락 거리는 소리가 뒤섞여 흘러나왔다. 각자의 집 사정을 나는 잘 몰랐다. 넉넉하지 않은 그 골목길, 각 집의 삶은 그리 녹록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팍팍한 하루를 보냈다고 해도, 결국 저녁 시간이면 기분 좋은 소리와 냄새가 기어코 가족들을 한 상으로 모이게 하는 것이었다.
사람은 밥을 먹어야 살 수 있다.
생물학적으로는 영양분을 섭취해야 하는 일이지만, 심리적으론 위로를 얻는 일이다. 그 둘을 충족해야 사람은 온전히 살아갈 수 있다. 내가 기억하는 골목길의 그 풍경은, 그 둘을 충분히 총족시키고도 남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셀 수 없이 많은 밥을 먹었고, 그와 같은 위로를 얻어온 셈이다.
그렇다면, 그 많던 요리는 누가 다했을까?
맛있게 먹었던 요리는 기억하지만 그 순간 누가 해줬는지를 기억하기란 쉽지 않다. 어쩌면 요리를 해 준 사람에 대한 배은망덕이다. 그 배은망덕은 결국 '불효'로 귀결된다. 세상에 태어나서부터 우리를 먹이는 건 부모님이다. 먹이기 위해서는 몸의 젖을 내어주거나, 그보다 컸을 땐 요리를 해줘야 한다. 나이에 맞게 요리를 해주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요리가 서툴렀던 아내도, 엄마가 되면서 각양각색의 음식을 해내게 되었다.
생각해보니, 나도 요리를 어찌하게 되었다.
어렸을 때부터 혼자였던 시간이 많았기에 요리는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요즘은 아이들이 먹고 싶다는 음식이 있다고 하면 요리를 해주곤 한다. 사랑하는 사람의 말은 쉬이 흘려버리기가 쉽지 않다. 라면은 물론, 치킨이나 떡볶이, 빠에야나 햄버거 등. 인터넷을 보고 서투르게 만들지만 왠지 뿌듯하다. 아이들은 나의 서투름을 모른다. 그저 대단하다고 느낄 뿐. 아마도 이것은 큰 추억이 될 것이다.
우리는 무수한 음식을 맛보고 먹어왔다.
그렇게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 많은 요리를 누군가에게 얻어먹고, 또 누군가에게 해줄 것이다. 그러는 과정에, 우리 몸은 영양분을 얻을 것이고 우리 마음은 위로와 힘을 얻게 될 것이다. 요리는 과정이다. 음식은 결과다. 과정과 결과는 삶에 있어 소중하다. 결과만 중시되는 사회에서, 우리는 돌이켜봐야 한다. 그 과정을. 그러면 감사한 마음이 들고, 그것은 영양분 이상의 심리적 안정을 가져다줄 것을 나는 믿는다.
그 골목의 분주함도, 누군가의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과정이었을 것이다.
나는 그 분주함을 존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