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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Jul 14. 2019

위로가 되는 음식

한식. 그런데 집에서 먹는 한식.

"어, 나 한국 도착했어."

"어땠어?"

"출장이 그렇지 뭐. 돼지고기 넣은 김치찌개 먹고 싶다."

"응, 준비해 놓을게요. 얼른 와!"




출장 출발하는 날, 비행기 바퀴가 땅과 떨어지자마자 나는 한국 음식이 그립다.

요즘은 웬만하면 세계 곳곳에 한국 식당이 있기 때문에 내 입맛의 외로움은 덜 하지만, 그래도 그게 집에서 먹는 밥과는 차원이 다르다.


먼 이국 땅에선 뭔지 모를 허기를 느낀다.

그것은 본능적인 기운이다.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 타지에서의 시간들은 그렇게 스스로로 하여금 방어체계를 구축하게 한다. 그래서인지 시차가 달라 밥 먹는 때가 다르고, 소화가 다 되지 않았는데도 꾸역꾸역 음식을 차곡차곡 들이 넣어 쌓는다.


그나마 그것이 한식이면 괜찮은데, 지역 음식이면 곤혹이다.

해외 출장을 부지기수로 다니고 주재원 생활을 하면서 각 지역의 음식을 존중하고 즐기려는 성향이지만, 지역 음식을 연달아 먹는 건 쉽지 않다. 입으로 들어가 목구멍을 넘어 위장으로 향하는 음식들이, 포만감은 줄지언정 속 시원하게 내려가지를 않는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배는 부르지만 뭔가 자꾸만 쌓이는 느낌. 쌓이지 않고 기분 좋게 누그러져 그것들이 몸의 활력이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를 못한 것이다. 그러다가 간혹 라면이나 한식의 국물이 들어가면, 모든 게 시원하게 내려가는 느낌이다. 그것은 나에게 말로 형용할 수 없는 타지에서의 위로다.


그래서 마침내 한국에 도착하면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김치찌개를 먹고 싶다고 응석을 부린다.

아내도 김치찌개가 먹고 싶다는 나의 말을 들으면, 긴 시간의 출장이 얼마나 힘들었고 고되었는지를 짐작한다. 준비해 놓을 테니 빨리 오라는 말은, 연애할 때의 그 어느 말보다도 더 달콤하고 아늑하다. 김치찌개를 볼모로 받는 또 하나의 위로다.


역시나 집에 도착하면 김치찌개는 모락모락 한 자태로 나를 기다리고 있다.

짐을 풀고 샤워를 한 후,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들과 함께 밥을 먹는다. 뭐가 그리 힘들었을까. 가족과 함께 하는 김치찌개 앞에서, 힘들었던 아무 기억이 나지 않았다. 쪼그리며 버텼던 긴 비행의 시간. 시차로 인한 피곤함과 무력함. 출장 중 쳐내야 했던 무수한 업무들. 돌아보니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저 난, 한식. 집에서 먹는 가족과의 음식에 집중했다.

그러니 받는 위로는 세상 무엇보다 컸다. 먹고사는 고단함은 그렇게 마침내 위로를 안겨다 준다. 왜 그리 힘겹게 살아내야 하는지에 대한 대답이다. 




"(우걱우걱... 음...) 아, 그리고. 나 다다음 주에 또 출장이야."

"아, 바쁘네. 마트에서 돼지고기 좀 더 사놔야겠다."


돼지고기를 좀 더 사놔야겠다는 말이 사랑한다는 말로 들렸다. 그것도 달콤하게.

그렇게, 삶의 힘겨움은 계속되고 위로도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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