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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Sep 08. 2019

직장인, 감정을 자주 '생각'하라

남의 감정을 '생각'할 때가 아니다. 내 감정을 '생각'해야 한다!

얼마 전 사람들의 공분을 일으킨 일이 있었다.

제주에서 일어난 일인데, 난폭 운전을 하던 승합차량에게 항의를 표한 운전자가 가족이 보는 앞에서 승합차 운전자에 의해 폭행을 당한 것이다. 삽시간에 해당 뉴스는 전국으로 퍼졌고 급기야 국민 청원까지 이루어졌다. 사람들은 그 잠깐의 화를 누르지 못했냐며 가해자에게 맹비난을 퍼부었다.


하지만 난 생각이 좀 달랐다.

분명, 가해자는 잘못한 게 맞다. 다만 내가 운전할 때 내 앞에 끼어든 차라던가, 나에게 경적을 울리는 차에게 분노를 표출했던 때를 떠올렸다. 차에서 내려 다툼을 하는 상상도 여러 번 했음을 고백한다. 가해자의 가해는 100% 잘못된 것이 맞지만, 그러한 행동을 촉발한 감정에 대해선 다시 한번 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게 내 의견이다.


남의 감정은 '생각'하고,
나의 감정은 '느낀'다!


'그 순간 화를 못 참고'...라고 우리는 쉽사리 말한다.

누군가에게 조언할 때도 마찬가지. "그냥 좀 참지 그랬어. 그 순간만 참았어도 일이 그 지경까지 되진 않았을 거 아니야"란 말을 우리는 자주 말하고 더 자주 듣는다. 하지만 이것은 감정을 느낀 당사자에게 내뱉는 제삼자의 오만과 거만이다. 그러한 말을 건네는 사람은 상대방의 감정을 그냥 '생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생각'은 '이성'을 말하고, 느끼는 감정보다는 일어난 '상황'에 초점을 둔다. 그러니, '그러한 상황이라면 너는 이랬어야 하는 게 맞아'란 말을 기계적으로, 계산적으로, 이성적으로 간단명료하게 말할 수 있는 것.


순간의 화를 참으라고 하는 사람들도, 정작 자신의 감정이 요동하는 상황이 오면 의연함을 잃고 만다.

왜냐하면, 그때는 감정을 '생각'하는 게 아니라, 날 것 그대로 '느끼기' 때문이다. 오롯이 전해지는 감정으로 맥박은 빨라지고, 식은땀은 줄줄, 호흡까지 거칠어지는 상황에서 차분하게 이성적인 판단을 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니 우리는 누군가의 감정의 반응에 대해, 함부로 왈가왈부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즉, 우리는 누군가의 감정에 개입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고, 감정에 있어선 어느 순간이라도, 누구에게라도 겸허해야 한다.


이제는 내 감정을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


어릴 적, 아주 재밌게 봤던 코믹 영화가 있었다.

아쉽게도 제목이 기억이 나진 않지만, 주인공이었던 한 형사는 욕을 너무 많이 하는 캐릭터였다. 그저 느끼는 그대로 욕이 튀어나왔고 주위 사람들은 그 소리가 듣기 싫다며 항의를 했다. 정신과 의사를 찾아간 형사는 뜻밖의 처방을 받았는데, 그것은 바로 욕을 하고 싶은 순간이 오면 욕 대신 '과일 이름'을 대라는 것이었다. 해서, 영화의 중반부 이후부터는 주인공의 입에서는 수 십 가지 과일 이름이 계속해서 나왔던 기억이 난다. 재밌는 상황이었지만, 이게 얼마나 '심리적'으로 효과가 있는 것인지를 요즘 절실히 깨닫는다.


미국 LA 캘리포니아대 심리학과 매투 리버먼 (Lieberman) 교수팀은, 감정을 표현하는 과정에서 편도체와 전두엽이 서로 상쇄하는 방향으로 작동한다는 것을 밝혀냈다.

편도체는 '감정'을 관장하고, 전두엽은 (많이 알려져 있듯이) '이성'을 담당하는데 슬픔이나 분노를 말로 표현하는 것만으로도 심리적으로 큰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내가 슬프구나'라는 것을 표현함으로써 전두엽이 활성화되며 감정이 상쇄되어 슬픈 그 감정이 누그러진다는 것. 슬플 때 '슬프다', 화날 때 '화났다'라고 솔직히 말하는 것이 감정을 조절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다.


심리학에선 이를 '인지적 전환'이라 한다.

느껴진 감정에 매몰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지금 어떤 느낌을 가졌는지 '생각'하는 것. 그리고 다른 것으로 표현하는 것. 그럼으로써 전두엽은 활성화되고 마치 내가 남의 감정에 대해 이야기하듯이 '이성적'으로 판단할 기회가 생긴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형사의 경우, '아 내가 화가 났구나. 그러니 욕이 나오겠네. 이걸 과일 이름으로 바꾸어야겠다'라는 인지적 전환을 아주 명확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생각은 하되 감정은 존중해야 한다.
감정은 말 그대로 느끼는 것이니까!


하지만 감정은 그대로 느끼는 것이 맞다.

감정을 자주 생각하라고 해서, 분노가 가득 찬 시점에 "난 화난 게 아니야, 난 괜찮아"라고 부정해선 절대 안 된다. 그것은 스스로를 억압/ 억제하는 것으로 오히려 정신에 무리가 가는 일이고, 심리적으로도 건강하지 못한 처사다. 희로애락은 사람의 본능이고, 그것을 느낌으로써 우리는 온전히 살아간다. 그것을 반대로 느끼거나, 못 느끼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그게 더 큰 문제다. 기쁠 땐 기쁘고 슬플 땐 슬퍼야 하는 게 맞다. 이렇게 보면, 누군가의 감정에 개입을 하지 못한다는 공식은, 자신의 감정에도 적용되는 것이다. 내 감정이 그렇다는데, 거기에 반기를 들거나 대항을 하기보단, 생각(인지적으로 알아차리기)하고 찬찬히 마음을 바라보는 것이 좋다. 그리고 그게 맞다.




직장인은 감정 노동자다.

사실, 하는 '일'은 다 거기서 거기다. 분업이 되어 있고, 분야별로 정형화가 되어 있으며 Process와 R&R(Role & Responsibility)로 굴러간다. 만약, 우리가 출근을 해서 이러한 '일'만 하고 간다면 기계 또는 로봇과 다를 바 없다. 하지만 그 와중에 일어나는 기쁨, 보람, 슬픔과 수치심이라는 '감정'은 많은 변수를 야기한다. 누군가는 이러한 감정들에 걸려 넘어지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그것을 발판 삼아 성장한다. 또 누군가는 그 감정들에 의해 깊은 상처가 생겨 피를 철철 흘리고, 다른 누군가는 용기 또는 오기를 얻어 분투한다.


그러니, 감정 노동자로서.

직장인은 자신의 감정을 진지하게 '생각'할 시간을 많이 가져야 한다. 살아 남기 위함이고, 자신의 역량을 끌어올려 성장하기 위함이기도 하다. 우리는 상대 운전자를 폭행한 승합차 가해자에게, 그 순간 화를 참지 못하고 그러한 일을 벌였냐는 비난을 퍼붓고 있지 않은가.


스스로를 돌아봐야 한다.

남의 감정을 생각할 때가 아니다.

내 감정에 오롯이 충실하되, 그 감정을 인지적으로 전환할 수 있는 '생각'의 틈을 살펴야 한다.


자주 그러할수록, 우리는 좀 더 우리의 마음을 지킬 수 있게 된다.

당장 그러는 게 쉽지 않다면, 기분이 나빠 욕을 하고 싶을 때 좋아하는 과일을 말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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